하창수씨,조선 화공다룬 소설 「그들의 나라」4권 출간

  • 입력 1998년 11월 4일 19시 07분


‘진정한 예술혼이란 무엇인가.’

작가 하창수(38)는 이 질문의 답을 찾고자 먼 시간을 여행했다. 조선 헌종때인 19세기초. 난이나 죽(竹)을 치며 고고한 정신세계를 뽐내기보다는 굶어죽은 자식을 언 땅에 내려놓고 한숨 쉬는 가난한 어머니의 모습을 그렸던 ‘환쟁이’들. ‘빈한의 문턱에서 언 두손을 비벼대며 그린 그림이야말로 모진 세상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라고 믿었던 화가 열 명의 치열한 삶이 시간을 뛰어넘어 ‘예술가’의 참모습으로 형상화됐다. 최근 전4권으로 발간된 ‘그들의 나라’(책세상). 작가가 93년 출간했던 장편소설 ‘허무총’을 개작한 것이다.

“대학시절 한 논문에서 조선후기 지배적인 화풍에 반하는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이 자신들의 그림을 땅에 묻어 숨겼다는 대목을 읽은 것이 창작의 계기입니다. 그런데 ‘허무총’은 미스터리 소설로 흐르고 말아 원래 의도했던 ‘예술가 소설’로 다시 쓰게 됐지요.”

서자, 문둥이의 양아들, 절집에 버려진 아이 등 태생부터 ‘귀하신 몸’과는 거리가 먼 열명의 화공들. 그들은 도포자락 휘날리며 사치스레 ‘문(文)’과 ‘예(藝)’를 논하는 그림을 거부하고 허겁지겁 한끼의 식사를 나누는 빈민 일가(一家)나 나뭇가지에 걸려 죽어가는 학, 남녀의 농염한 정사 등 자신들의 혼을 뒤흔든 한순간을 화폭에 옮기다가 결국 ‘서학(천주교) 그림패’라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다.

작품을 쓰는 동안 하창수는 실재했던 조선 후기 ‘반골’ 화가들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기 그림에 대한 혹평을 참지못해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버렸던 최북, 진경산수로 한국화의 독특한 기풍을 만들어낸 겸재 정선…. 미술사에 관한 지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론서들도 닥치는대로 읽었지만 4천2백장의 원고지를 메우게 한 에너지는 서울 인사동 한 고화랑에서 백지 위에 지붕만 그려넣은 혜원 신윤복의 그림을 보았을 때의 전율이었다.

“너무나도 사소해진 일상, 그렇고 그런 현대인의 경험을 뛰어넘는 진정한 열정을 선조들의 그림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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