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인숙씨, 세번째 소설집 「유리구두」펴내

  • 입력 1998년 5월 14일 19시 27분


지금 내가 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어느날 아침, 나는 혼자가 되어 있더라는 것. 그것 뿐이야….

어쩌면 고독이, 고독이 나로 하여금 자전거를 타게 만들었는지 몰라. 오직 혼자서만 타게 되어 있는 자전거. 절대로 누구를 그리워할 필요가 없는 자전거….

그런데 나는 번번이 꿈 속에서 자전거의 뒷자리에 앉아 등판이 단단한 어떤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어. 꿈을 깬 새벽녘, 나는 목이 메지. 그는 누구일까. 나를 버리고 간 남편일까. 아니면, 나를 이 자리까지 끌어온 내 청춘의 초상일까.

아, 아직도 뭔가가 남아 있는 걸까. 포기하지 말아야 할 어떤 것. 내 삶이 다할 때까지 끝끝내 붙들고 있어야 할 기다림, 언젠가 내 삶에 환하게 터져올 햇살의 그리움, 그런 것들이….

소설가 김인숙씨(35).

그는 아직도 80년대의 ‘낡은 앨범’ 속에 갇혀 있다. 그 빛바랜 자전거를 끌고 가며, 그 위에서 넘어지고 자빠지며, 무릎을 깨고 뺨에 흉터를 남기며 기다린다. 그 뭔가를.

그런 그의 세번째 창작집, ‘유리구두’(창작과비평사).

“꽃에도 기다림이 있을까요. 기다림이 있다면, 어떤 간절함이 저 꽃을 저토록 아름답게 피어나게 했을까요. 그리고 어떤 그리움의 절망이 저 꽃을 저토록 한순간에 지게 했을까요….”

실로 궁금하다.

대체 무엇이 작가를, 스무 살의 나이에 ‘핏줄’이라는 작품을 써 장안의 화제가 됐던 문단의 신데렐라를, ‘운동’을 할 때도 너무 씩씩해서 양볼이 국광사과처럼 늘 빨그스름했던 그를, ‘80년대의 그늘’ 속에서 웅크리게 하는지.

그 뜨거웠던 이념도, 그 치열했던 의식도 이제 90년대의 ‘뙤약볕’ 아래 하릴없이, 마지막 촛농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여기에 실린 중단편들은 대부분 95년 이후에 씌어졌다. 작가가 호주로 건너갔다 1년반만에 딸아이를 데리고 돌아온 그 이후에.

그런데도 소설의 주인공들은 작가가 아등바등 건너온 시대, 지금은 세월의 갈피 속에서 천덕꾸러기가 되고 만 그 시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고 나면 누가 죽고 또 누가 끌려갔다는 소문이 참으로 흉흉하던 그 시절’에서.

‘유리구두’의 남자. 결혼이라는 ‘거래’를 빨리 해치움으로써 편안한 생의 안정감 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던 남자. 그는 거래가 성사되려는 순간 찬물을 끼얹듯, ‘첫사랑’의 기억에 휩싸인다. 첫 만남에서부터 어긋났던. 그는, ‘이제 나이 삼십에 남은 가능성이라곤 섹스밖에 없다’는 그 첫사랑을 부여잡고 외치고 싶어진다. 섹스말고도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지 않느냐고(‘유리구두’).

‘그 여자의 자전거’에서도 여자는 쌩, 달려나가질 못한다. 나아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회한에 젖어 중얼거린다. “나는 세상을 바꾸려하지 않았어요. 세상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무것도 바꿀 생각이 없었을 뿐만이 아니라 그 무엇을 위해서도 바뀔 생각이 없었어요. 나는….”

그리고 ‘문’에서는 마침내 포기하듯 아니,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는 듯 절규한다. “삶은 결국, 문고리를 붙든 채 문 안도, 문 바깥도 아닌 곳에서 마냥 서성거리는 짓에 지나지 않아. 그러니까 그냥 안전하게 살아. 문을 열려고 하지 않으면 아예 문이라는 것이 없는 곳에서, 살아, 안전하게 살아. 안전하게!”

작가에게 묻고 싶다.

이제는 그 시절의 ‘흑백사진’을 가슴에서 내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80년대의 그 ‘지독한 섹스’는 끝났으니, 우리 시대가 내미는 ‘값싼 화대(花代)’에 창녀의 모욕을 느낄지라도, 그만 ‘그 방’에서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작가는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흘린다.

“그 시기에 그들에겐 특별함이 있었지. 그 특별함엔 열정이 있었어. 그 시기에는 타락까지도 열정이었던 거지. …하지만 그것은 이제 그들에게 추억일 뿐이야. 어느날 아침 눈 떠보니 그들은 추억 밖의 세상에 던져져 있었던 거지….”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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