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옛날이야기」전집5권,전래동화 재밌게 풀어

  • 입력 1998년 3월 14일 07시 53분


옛날 옛날에…,

어느 마을에 지독한 노랑이 영감이 살고 있었습니다. 영감의 집 바로 옆에는 수백년 묵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그 느티나무는 키가 훤칠한데다 이파리 또한 싱싱해서,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었습니다.

어느 여름날 한 총각이 뙤약볕에서 김을 매다가 느티나무 아래로 찾아들었습니다. 그때 벼락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노랑이 영감이었습니다.

“네 이놈. 썩 나가지 못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온 게냐?”

“영감마님. 김을 매다가 땀이 너무 나서요.” “이런 놈을 봤나. 아, 이 나무가 누구 나무인데 함부로 들어와?”

영감의 성깔을 익히 아는 총각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영감마님, 어떻습니까? 이 나무 그늘을 팔지 않겠습니까?”

노랑이 영감은 귀가 솔깃했습니다. 나무도 아니고 나무그늘을 사겠다니, 호박이 덩굴째 굴러 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것도 좋겠지. 하지만 그늘을 살려면 적어도 다섯냥은 있어야지….”

가교에서 펴낸 ‘나무 그늘을 팔아먹은 부자’. 시인 최하림씨가 맛깔스럽게 푼 옛이야기 시리즈(전5권)로 선보였다.

최씨가 모으고 다듬어서 새로 펼쳐 보이는 옛이야기들은 줄거리가 빤히 비치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넘어선다. 어둡고 긴 동굴 속을 더듬어 가듯, 꼬불꼬불 구불구불 이어지는 줄거리가 흥미진진하다.

이 시리즈에는 서민들의 삶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온 이야기, 말없이 우리 역사의 중심을 떠받들어온 민중의 애환이 어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 오면서, 마치 크고 깊은 강이 중간중간 수많은 샛강의 물을 받아 흐르듯 끊임없이 더해지고 보태진.

‘나무 그늘…’ 외에, ‘부마를 잡으러 간 두 왕자’ ‘호랑이 형님과 나무꾼 아우’ ‘한길에서 삼년을 뒹군 나무꾼’ ‘우렁이 색시’가 함께 나왔다.

총각은 그날로 다섯냥을 구해 느티나무 그늘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일을 하다말고 그늘에서 편히 쉬곤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해가 점점 기울어감에 따라 나무그늘도 차차 자리를 옮겨 갔습니다. 나중에는 나무 그늘이 부자 영감네 담을 넘어 마당 안으로 뻗쳤습니다.

총각은 나무 그늘을 따라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옮겨 가며 잠을 잤습니다. 물론 부잣집 마당 안까지 자리를 옮겼지요. 나무 그늘은 마침내 부잣집 안방 깊숙이까지 옮겨갔습니다. 총각도 부잣집 안방 깊숙이 들어갔습니다.

영감은 벌컥 화를 냈습니다. “이 고얀 놈 같으니! 어서 썩 나가지 못해?” 총각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습니다. “아니, 영감 마님. 며칠전에 소인에게 그늘을 팔지 않으셨어요?”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 내가 나무 그늘을 팔았지, 우리 집 안방을 팔았느냐?” 총각이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말했습니다.

“영감 마님 생각 좀 해보셔요. 나무 그늘을 샀으니 그 그늘은 분명 소인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나무 그늘이 어느 곳으로 가든 그것은 소인의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영감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영감은 ‘이럴 줄 알았다면 나무그늘을 팔지 말 것을’ 하고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총각은 틈날 때마다 부잣집 안방을 드나들었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영감은 살던 집을 버리고 이사를 갔대나, 어쨌대나….

〈이기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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