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금융현장]『신용실종』현금거래 크게 늘어

  • 입력 1998년 3월 4일 20시 20분


작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을 신청한 뒤 금융현장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믿지 못할’ 어음거래가 줄어들고 서민들은 신용카드 사용을 대폭 줄이고 있다.

▼어음거래가 줄어든다〓도산기업이 많아지면서 현금선호 풍조가 만연해 어음 기능이 크게 위축됐다. 일선 은행창구에서는 ‘어음 구경한지 오래’라는 말까지 나온다.

어음교환액은 작년 12월 유난히 많았다가 올 1월엔 16% 가량 줄었다. 이달 어음교환 규모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게 은행 창구직원들의 예측.

중소기업 어음할인을 주 업무로 하는 상업은행 구로동지점의 관계자는 “IMF 이전에는 하루 20∼30건을 할인해 줬는데 요즘은 10건 이상 되는 날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외환은행 최경식(崔京植)상무는 “이대로 가다가는 어음제도 자체가 존폐위기를 맞아 실물경제를 위축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기관 부익부 빈익빈〓종금 증권 투신사들이 잇따라 도산하자 돈 가진 사람들이 우량 금융기관으로 몰리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에 지불준비금을 쌓을 필요가 없는 제2금융권의 일부 우량회사 창구에선 높은 금리에 돈을 맡아달라는 고객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진풍경도 나타난다. 이들 금융기관은 연 25%이상의 금리에 자금을 유치하면 마땅히 운용할 데가 없어 골치라는 것.

한불종금 유경찬(柳瓊粲)이사는 “고객들의 요구대로 예금이자를 주면 마진을 남기기 위해서는 한계기업에 대출하는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런가하면 아직 생사가 불투명한 종금사들은 매일 밤 늦게야 한국은행의 중개로 콜자금을 빌려 결제위기를 넘기곤 한다.

▼신용카드 이용실적 급감〓국민 BC 외환 삼성 LG 등 5개 전업회사가 집계한 카드 이용실적은 지난해 12월 5조7천8백억원에서 올 1월에는 4조5천3백억원으로 1조2천5백억원(22%) 감소했다. 이중 현금서비스를 뺀 외상구매 실적은 한달새 8천억원 이상 줄었다.

IMF시대를 맞아 꼭 필요한 물건만 구입하는 절약풍토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사채대출 까다로워져〓직장인들을 상대로 선이자를 떼고 돈을 빌려주는 서울 명동 사채업자들의 대출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재직증명서 소득세원천징수영수증 등 간단한 서류로 수백만원까지 빌려주던 사채업자들은 대부분 신용대출 한도를 1백만원으로 낮췄다. 그나마 중소기업이나 고용조정설이 나도는 회사 직원은 상대도 안한다.

집이나 전세계약서를 담보로 한 대출도 피하는 분위기. 한 대출알선업자는 “예전에는 대출액이 감정가의 60∼70%에 달했으나 부동산 담보가치가 하락한 요즘은 30∼40%만 빌려준다”고 말했다.이밖에 주유권을 헐값에 파는 ‘주유카드 깡’도 성행하고 있다. IMF한파로 차를 처분한 사람들은 주유권을 액면가의 50%만 받고 파는 경우도 있다는 것.

〈정경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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