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詩 심사평]최승자·이남호

  • 입력 1997년 12월 31일 18시 33분


마지막으로 두명의 응모자를 두고 논의를 하였다. 김충규와 여정은 각각 대조적인 개성과 장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의 시를 당선시킬 것인가가 쉽지 않았다. 두사람 다 시적 역량이 있다고 판단되었다. 김충규의 시들은 안정감이 있다. 응모작 가운데서 ‘성’ ‘우물’ ‘낙타’같은 작품들이 돋보인다. 개성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응모자들보다 돋보인다. 그러나 김충규의 시들은 내용에 걸맞은 형식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산문시의 형식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나 감정의 구조와 잘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불필요한 진술들이 언어의 긴장을 해치는 곳이 종종 눈에 뜨인다. 여정의 시들은 강렬하다. 그 강렬함은 아마도 체험의 강렬함에서 오는 듯하다. 여정의 시들은 형식이 오히려 서투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익은 내용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음식환상’이나 ‘비가’같은 작품들이 특히 그러하다. 언어나 형식에 대한 성실한 천착이 부족한 듯 하면서도 내용과 상상력이 언어나 형식을 압도해버리는 측면이 있다. 한편 한편의 완결성과 안정감을 취한다면 김충규의 시가 앞선다. 반면 시적 인상의 강렬함이라는 면에서는 여정의 시가 앞선다. 단 한편만으로 뽑는 신춘문예의 속성을 고려한다면 ‘낙타’를 뽑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여정의 시에서 좀더 많은 가능성을 보았다. 여정이 당선된 이유의 대부분은 ‘자모의 검’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자모의 검’ 한편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여정의 다른 작품 또는 앞으로의 활동을 지켜봐주기를 부탁드린다. 당선자의 문운을 빈다. <최승자·이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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