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잔치 속에 내실을 위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은 한해였다. 예술 영화들을 한자리에 모은 제2회 부산 국제영화제(10월)와 제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8,9월)가 관객의 열띤 호응 속에 개최됨으로써 한국이 양적 질적으로 「영화 소비 대국」으로 떠올랐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각기 1백50여편이 넘는 작품 가운데 국산 영화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여서 한국 영화 위기론을 낳았다. 흥행상으로 보면 올해 상반기부터 하반기까지 「비트」 「접속」 「창」 「편지」 등 「대박급」상품들이 꾸준히 나왔으나 작가 정신과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은 드물었다.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가 캐나다 밴쿠버와 일본의 도쿄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음으로써 체면을 유지한 정도였다.
한국 영화의 위기 징후는 제작 편수에서도 나타났다. 올해 제작된 한국 영화는 57편(심의 신청 기준)으로 40년만에 최저를 기록했으며 내년에는 더욱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충무로의 소자본들을 구축(驅逐)하고 영화제작자의 자리를 점거한 대기업들이 채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영화 제작을 꺼리고 있기 때문.
반면 할리우드 영화들은 올해도 승승장구했다. 「잃어버린 세계」 「콘에어」 「맨 인 블랙」 「페이스 오프」 등은 각기 서울에서만 1백만명 내외의 관객을 모았으며 이중 대다수가 직배 영화였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직배사가 본사에 송금한 로열티는 지난해에 비해 30% 증가했다. 내년에는 누적된 적자와 외환 위기 때문에 대기업들이 영화 수입을 대거 줄임으로써 직배 영화들의 독점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비디오 경향을 보면 할리우드 액션장르의 「패권장악」, 프랑스 대중예술영화의 「완전참패」, 홍콩 느와르의 확연한 퇴조, 한국영화의 「평년수확」으로 요약된다. 「으뜸과 버금」 집계 「인기 비디오 50」을 보면 액션 29편, 스릴러 7편으로 대다수를 이뤘으며 프랑스 영화는 뤽 베송의 「제5원소」 한편이었으나 그나마도 할리우드성격의 SF였다.
〈신연수·권기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