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출판시장은 4월들어 「아버지」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 바통을 넘겨주면서 지각변동이 일기 시작했다. 「∼가지」류 비소설의 목청이 한껏 높아지면서 문학작품의 위상이 「풍금이 있던 자리」만큼이나 썰렁해진 것.
상반기, 스산한 「명퇴」 바람을 타고 독자들을 파고 들었던 「아버지」.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수기류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시장판도를 문학에서 정신 마음 명상류 서적으로 유도하는 기폭제가 됐다.
또한 명상류 서적의 붐을 선도해온 「101가지 이야기」는 올해 2백만부 이상이 팔려나가면서 기획출판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하반기부터 「선과 악을 다루는 35가지 방법」 「2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 등 처세서와 컴퓨터 어학 미용 건강 등을 주제로 한 실용서가 봇물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시인 류시화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등 자신의 책 4권을 동시에 베스트셀러로 띄우는 행운을 잡았고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은 대중역사서의 러시를 불러왔다.
이에 비해 창작물은 매우 저조했다. 이문열의 「선택」, 공지영의 「착한 여자」, 이외수의 「황금비늘」, 최인호의 신문연재소설 「사랑의 기쁨」 등 몇몇 정도가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한해 동안 계속 움츠려온 출판계.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잇따른 서적 도매상들의 도산과 내년 3월 연쇄부도설이 확산되면서 더욱 얼어붙는 분위기다. 여기에 사재기 표절시비에 따른 매터도 인신공격까지 난무, 연말 출판계는 그야말로 황량하기만 하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