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난영화(Disaster Movie)」. 괌에 추락한 대한항공기 참사에서 빠져나온 한 생존자는 『우리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고 생존 승무원에게 물었다.
인간이 당한 극한의 참화를 재현하거나 상상으로 그린 영화가 수없이 많다. 비행기 사고는 물론이고 화재와 홍수 태풍 화산폭발 여객선침몰 지진 건물붕괴 등 천재와 인재가 영화 속에 펼쳐진다.
재난영화는 다른 장르보다 더 많은 특수효과와 엄청난 제작비를 요구한다. 할리우드의 영화업자들은 인간이 부닥칠 수 있는 재난을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영화화함으로써 수익을 올려 왔다. 재난영화 제작의 목적은 「돈벌이」에 있지만 관객에게는 영화를 통해 위기를 가상체험하거나 과거의 참사를 「상기」하는 기회가 된다. 대형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긴급구난 대응력을 기르는 간접적 효과도 있다.
1972년 10월 안데스산맥에 추락한 전세항공기사고를 재현한 영화 「얼라이브(Alive)」. 우루과이대 럭비선수 45명이 타고 있던 이 비행기가 추락한 뒤 인육까지 먹으며 72일만에 구조된 사람은 16명이었다.
제작진은 20년 뒤 이 사고를 영화로 만들기 위해 생존자를 인터뷰했으며 현장을 정밀 조사했다. 사고기와 같은 기종인 F227기 4대를 구입했다. 추락 상태를 재현하기 위해 두꺼운 얼음을 파헤친 뒤 비행기를 놓았다. 수백명의 스태프가 고산지대에서 4개월 이상 버텼다. 촬영현장은 안데스산맥과 미국 컬럼비아산의 해발 3천m 지점(실제 추락 지점은 3,500m). 빙하의 균열과 절벽 눈사태 등 위험을 점검하기 위해 등산전문가들이 동원됐다. 배우들은 몸무게를 10㎏씩 줄인 상태로 몇개월을 버텨야 했다.
화산폭발을 소재로 한 97년 영화 「볼케이노」. 이 영화의 배경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한 로스앤젤레스. 페이지박물관과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등 로스앤젤레스 월셔가를 영화에 그대로 재현해 현실감을 높였다. 이 영화는 맥도널 더글러스 비행장에 실제 월셔가의 80% 크기로 만들어진 세트에서 촬영됐으며 로스앤젤레스의 비상대책센터 직원들이 엑스트라로 동원됐다. 8천만달러(약7백2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1억달러(약9백억원)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오는 겨울 미국에서 개봉될 「타이타닉」은 1912년 빙하와 충돌, 침몰한 호화유람선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그린 영화. 멕시코 자바섬에 건설된 길이 3백m의 대형 수조에는 60만ℓ의 물이 가득 채워졌다. 그 위에 길이 2백m의 모형배를 띄워 최근 촬영을 마쳤다. 제작비는 사상 최고인 3억달러(약2천7백억원). 당초 올 여름 개봉예정이었으나 감독인 제임스 카메론이 더 좋은 화면에 욕심을 부리는 바람에 촬영이 늦어졌다는 후문.
영화평론가 유지나씨(동국대교수)는 『현대인들이 지닌 재난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를 극대화하고 극적 해결을 보여줌으로써 카타르시스를 꾀하는 것이 재난영화』라고 정의했다.
▼ 재난영화 어떤게 있나 ▼
1912년 1천5백명의 희생자를 낸 「타이타닉호」 침몰이 재난 영화 소재의 원조격. 이 사고는 20년대 이후 여러 차례 영화로 되살려졌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58년 제작된 영국영화 「잊을 수 없는 밤」. 로이 베이커 감독의 이 영화는 명작으로 꼽힌다.
또 53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미국 영화 「타이타닉」이 알려져 있으며 올 겨울 미국에서 개봉될 「타이타닉」 제작에는 거액이 투입됐다. 미국에서는 최근 같은 소재를 CBS가 미니시리즈로, NBC가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으며 뮤지컬도 올해 토니상을 받는 등 「타이타닉」붐을 이뤘다.
50,60년대에는 전쟁영화와 사극류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재난영화가 없었으나 70년대 들어서면서 재난영화 제작이 본격 재개됐다. 화재를 소재로 한 「타워링」,배가 침몰하는 아비규환을 그린 「포세이돈 어드벤처」, 찰턴 헤스턴 주연의 「대지진」 등이 국내에서도 개봉돼 화제가 됐다.
최근 1, 2년 동안 잇따라 재난 영화들이 나왔다. 화산폭발을 그린 「볼케이노」와 같은 소재로 흥행 경쟁을 한 「단테스 피크」, 뉴욕의 지하터널 붕괴를 소재로 한 「데이라잇」(실베스터 스탤론 주연), 토네이도(돌풍)의 피해를 그린 「트위스터」 등이 있다. 이밖에 「분노의 역류」 「리틀 빅 히어로」 「허리케인」 「스웜」 등도 자연재해와 사고를 소재로 한 영화.
〈신연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