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늪. 서울 H공고 자동차반 졸업반인 이용주군(18)은 요즘 잠이 안온다. 실습생을 원하는 업체가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준 것. 2학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구인모집이 시작되어 조금 나아진다고는 하지만 요즘 추세라면 한반에 6,7명이나 나가게 될까. 담임 선생님도 틈만 있으면 불황때문에 학생들 현장실습조차 하기 힘들게 됐다고 걱정이 태산이다.
자동차정비사 자격증도 미래를 보장 못한다. 대형정비소들의 채용규모도 엄청나게 줄었다. 빌어먹을 불경기. 조그만 카센터에 취직하기도 도통 쉽지 않다. 이럴줄 알았으면 기중기 운전면허라도 따놓는 건데. 하지만 기중기자격증 갖고도 일자리가 없어 노는 사람 천지란다. 말로만 듣던 사회라는게 바로 이런 건가. 실습기간 6개월동안 열심히만 하면 채용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이군은 결국 전문대에 가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아슬아슬한 취업. 일단 2년의 시간을 벌자. 그리고 생각하자. 경력을 더 쌓자. 목표는 자동차공학연구소. 물론 거기도 공대생들과의 버거운 싸움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오후3시. 이군은 수업이 끝나면 곧장 동대문에 있는 학원으로 간다. 수능준비. 밤12시 귀가. 힘들다.
서울 D여상 졸업반인 박수현양(17)도 이군과 비슷한 처지. 올 졸업예정자가 1천 3백여명이나 되는데도 업체에서 구인 희망자수는 아직까지 40여명뿐. 작년 이맘때의 2백여명과 비교해보면 너무 차이가 난다. 가을에 가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올해는 취업을 못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될거라는 게 선생님의 예상이다. 박양은 아무래도 불안해서 친구들 5명과 함께 피부 미용사 학원에 등록했다.
최근 실업계 고교 학생들의 취업난이 사상 최악을 기록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군의 경우처럼 아예 대학진학쪽으로 마음을 바꾸는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박양의 경우처럼 다른 분야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학생도 많다. 2,3개의 자격증을 따놓고도 취업이안될까 걱정하는학생들도있다. 일부학생들중에는『대충대충살자구. 피자나 자장면 배달을 해도 한달에 1백만원은 거뜬히 버는데 취직 못해서 그렇게 안달할 필요 있나』식으로 아예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H택시회사. 작년 현장실습을 통해 2명의 공고학생들을 채용했다. 그러나 경기불황으로 서있는 택시의 숫자가 늘어났다. 이 회사 택시 1백여대중 20%인 20여대의 바퀴가 구르지 않는다. 더이상의 정비공이 필요없다.올 해 현장실습도 없다.
서울 북공업고등학교 관계자는 『작년 동기에 비해 30%정도 실습생유치신청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선생님들이 업체들을 직접 방문해 학생들을 「세일즈」하거나 수백개 업체에 일일이 실습의뢰서를 보내야 할 형편이다.〈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