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작가 김소진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서울 미아리 산동네. 아홉가구가 함께 공동변소 하나를 쓰던 그 판자촌은 어린 김소진이 무릎에 상처를 내며 걸음마를 배웠던 고향이다.
성년의 작가가 소설속 주인공의 몸을 빌려 찾은 옛동네는 아파트단지로 재개발중이다. 포클레인의 날카로운 삽날이 판잣집들을 허문 폐허속에서 주인공은 깨진 옹기그릇에 똥을 누며 운다. 「기억의 육체」인 산동네, 이제 사라지고 말 그곳에 자신을 작가로 키운 유년의 기억을 묻는 것이다.
김소진의 마지막 완성작 「눈사람속의 검은 항아리」(계간 「21세기문학」 봄호). 소설의 주인공은 옹기그릇에서 일어나 「모래주머니를 발목에서 풀어낸 달리기선수처럼 가뿐하게」 자신을 기다리는 또다른 일상을 향해 걸어갔지만 젊은 작가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르는 문턱에서 끝내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지난달 22일 세상을 떠난 작가 김소진의 소설집 「눈사람속의 검은 항아리」(강출판사)가 이번 주말 출간된다. 96년 펴낸 창작집 「자전거도둑」이래 문학계간지 등에 게재한 작품을 모았다. 수록작은 「신풍근 배커리약사(略史)」 등 2편의 중편과 미완성유고 「내 마음의 세렌게티」를 포함한 9편의 단편소설. 문학사에서의 위치를 가늠할 시간도 주지않고 너무 이르게 먼길을 떠난 작가를 위해 계간 「한국문학」 여름호는 추모특집을 마련했다. 조사와 추모시, 선배작가 김성동씨가 쓴 비문, 생전의 김소진을 기억하는 동료작가들의 회고담 등이 실렸다.
오는 6월9일 오전10시 신촌 봉원사에서 김소진의 문우들은 그의 소설집을 바치며 극락왕생을 비는 사십구일재를 올린다.
〈정은령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