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동포 허정숙씨의 비극]죽음으로 끝난 「코리안 드림」

  • 입력 1997년 3월 14일 20시 21분


[전승훈기자] 「받을 돈을 모두 받아가지고 꼭 돌아가겠습니다. 당신과 아이들이 무척 보고 싶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10시반경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서울지하철 2호선 성내역 승강장에서 중국교포 許正淑(허정숙·46·여)씨가 전동차에 몸을 던져 한맺힌 한국생활을 스스로 마감했다. 사고직후 허씨에게는 여권과 거민신분증(중국 주민등록증), 8만여원의 돈이 발견됐으나 유서가 없어 연고자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경기 성남의 외국인노동자의 집 金海性(김해성·38)목사가 중국교포들에게 수소문,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 사는 남편 한동국씨를 찾아내 허씨가 서울에서 보냈던 편지와 전화 통화내용을 팩스로 받았다. 「식당에서 함께 일하는 동포여성이 함께 술을 마시자는 한국인 손님의 요구를 거절한 뒤 불법체류자로 신고돼 이튿날 경찰이 식당에 와서 그여자를 잡아갔습니다. 그때 저도 뒷문으로 도망쳤습니다」. 편지에는 불법체류자인 허씨가 2년간 서울 강남 등지의 식당을 전전하며 고생한 모습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중국에서 남편과 자식 둘, 병든 시부모를 모시고 셋방살이를 하던 허씨는 지난 95년 8월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인민폐 5만원(5백만원)을 사기당했다. 그뒤 연변과학기술협회의 석달기한 한국 연수에 등록하는 수속비로 4만원(4백만원)을 주고서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사기당한 빚 5백만원을 겨우 다갚은 허씨는 대학에 입학한 큰아들과 연변제1중학교에 다니는 작은아들의 학비를 벌어 중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했다. 그러나 사고당일인 10일 오전 8시경 마지막으로 일하던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H여관 아주머니에게 『출국하려면 불법체류 벌금으로 2백만원정도가 필요하다. 전에 일하던 곳으로 돈받으러 간다』며 떠난 허씨는 2시반 뒤에 전동차에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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