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빙하기 대비해야”… 자산매각 등 현금 확보 나선 기업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코로나19 팬데믹]
코로나로 자금조달 막혀 ‘비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공포에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동시에 패닉에 빠지면서 국내외 기업들도 자금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앞으로 경영 환경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하고 팔 수 있는 자산은 닥치는 대로 팔아치워 현금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수익성 악화로 국내외 기업들을 둘러싼 신용 위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온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돼 빚을 갚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 팬데믹에 얼어붙은 기업 자금 시장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포스코그룹의 발전 자회사인 포스파워는 이날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500억 원 모집에 400억 원만 들어와 모집 금액에 미달했다. 앞서 13일 하나은행도 회사채 투자 수요 확보에 실패했다. 둘 다 신용등급이 AA등급인 우량 기업이었지만 투자심리 악화의 찬바람을 피하지 못했다.

연초까지만 해도 실적 개선 기대로 뜨거웠던 회사채 시장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3년 만기 AA―등급 회사채 평균금리는 연 1.740%, 국고채 금리는 연 1.030%로 마감해 금리 차가 2012년 4월 이후 8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국고채에 비해 수익률은 높지만 상대적으로 위험한 회사채가 시장에서 외면받아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또 다른 기업 자금 조달 창구인 기업공개(IPO)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주가 급락 등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식어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코스닥 상장을 위한 공모 절차를 밟던 메타넷엠플랫폼과 센코어테크 등이 5일 각각 공모를 철회했고,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LS EV코리아도 13일 IPO를 철회했다.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글로벌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딜로직에 따르면 1, 2월 세계 회사채 발행액은 3640억 달러(약 448조 원)로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다. 코로나19의 충격이 세계 전체로 확산된 3월 이후에는 자금 확보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올해 IPO 최대어로 꼽히던 에어비앤비가 코로나19로 글로벌 이동이 제한돼 실적이 악화되면서 내년으로 상장을 미룰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글로벌 기업들 현금 확보에 사활


코로나19의 충격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들은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신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 마련 성격이 컸다면 지금은 장기 불황에 대비해 안정적인 현금 확보 차원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달 LG는 LG전자, LG화학 등이 중국 베이징에 위치한 베이징 트윈타워 지분을 매각하며 약 1조3700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SK네트웍스는 최근 보유하고 있는 직영 주유소 302개 전체를 1조3321억 원에 매각하는 내용의 사업 양도 계약을 체결하며 석유 소매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매각 자금은 차입금 상환에 쓸 예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와 유통업계도 비상이다. 한진그룹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이달 말 600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할 예정이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유휴자산인 송현동 부지와 비주력사업 등에 대한 매각에도 속도를 낼 계획이다.

유통업계는 오프라인 점포를 유동화하는 방식으로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10월 백화점 마트 아웃렛 등 10개 점포를 롯데리츠에 매각해 1조6000억 원을 확보했다. 신세계그룹도 세일 앤드 리스백 방식으로 지난해 10여 개의 점포를 매각해 1조 원가량을 확보했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서울 강남구의 옛 사옥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재무 건전성을 높일 계획이다.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기업들도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달 신용등급이 정크본드 수준으로 추락한 글로벌 식품기업 크래프트하인즈는 대출을 통해 40억 달러를 확보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잉737맥스 생산 중단에 이어 코로나19로 이중 악재를 만난 항공기 제조사 보잉도 긴급 추가 자금 확보에 나섰다.

자금 사정이 나은 기업들도 예방 차원에서 현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반도체 회사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13일 보유 현금 확대 및 재무적 유연성 확보를 위해 신용한도인 25억 달러를 모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으로 투자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기업들의 자금 경색이 계속될 경우 연쇄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적 악화로 신용도가 낮아진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실패해 파산하면 주변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신용위험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한꺼번에 자금시장에서 현금 조달에 나설 경우 은행의 자금 압박으로 이어져 금융 시스템으로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의 재무 상태가 나빠지면 회사채의 투자 매력은 떨어진다”며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겨 일부 기업이 파산하기 시작하면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돼 시장이 마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자현 zion37@donga.com·지민구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코로나19#팬데믹#포스파워#회사채#기업 자금 시장#글로벌 기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