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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국민은 체제 바꾸는 ‘사회계약’한 적 없다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0-12-15 14:37수정 2020-12-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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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15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상생’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 했다. 그때 ‘사회계약’이라는 단어에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그냥 레토릭이겠거니 무심히 넘어갔다.

이번 국회에서 자행된 집권세력의 ‘입법 쿠데타’를 보니 알겠다. 새로운 사회계약이란 대한민국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임을.

집권당이 강행처리한 경제 3법, ILO(국제노동기구) 3법은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법들이다. 5·18역사왜곡처벌법과 대북전단금지법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박탈하는 내용이다. 공수처를 만들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쳐내는 건, 반역의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할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이렇게 변혁 당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5일 오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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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판 뉴딜이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

사회계약이라는 단어는 평상시 쓰는 말이 아니다. ‘문재인’과 ‘사회계약’을 넣어 구글 검색을 하면 7월 14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 한 문 대통령의 발언이 처음 등장한다. ‘대전환의 시작’이라는 간판의 이 행사에서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설계”라고 자그마치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계획을 천명했다. ‘우리 경제를 바꾸고, 우리 사회를 바꾸며, 국민의 삶을 바꾸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라는 거다.

이틀 뒤 국회 개원 연설에서도 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연설 뒤 정당 대표들과의 대화에선 “한국판 뉴딜은 단순히 일자리 몇 개 늘린다거나 경제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또 한번 주장했다(그런데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답답했을 듯하다).

사회계약론은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사회과학이론이다. 국가가 생기기 전 자연상태는 불안정하다. 그래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자발적 합의를 통해 국가를 형성하는 사회계약이 발생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문 대통령은 국민의 자발적 합의 없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천명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 미국 뉴딜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열었다

국가가 생기기 전의 자연상태를 토머스 홉스(1588~1679)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본 반면, 존 로크(1632~1704)는 이성에 의해 자연법을 따르는 자유의 상태로 본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인간은 본래 자유인으로 태어났지만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했다.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양도하는 것은 자기보존(홉스)이나 재산(로크), 자유와 평등(루소)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이는 정치철학자들의 사고(思考)실험이고 실제로 체결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사회계약론이 의미 있는 건, 사회계약을 들고 나온다는 자체가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겠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했던 것(뉴딜)이 사실 새로운 사회계약이고 사회개혁”이라고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한국판 뉴딜을 설명하면서 강조했다. 대공황 여파로 공화당 12년 장기집권을 깨고 1933년 취임한 민주당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뉴딜이라는 말 그대로 루스벨트는 계약자유방임주의 대신 국가 개입의 수정자본주의로 새로운 질서를 열었다(정작 경제위기를 극복한 건 뉴딜보다 제2차 세계대전 효과라고 본다).

75회 광복절인 15일 시민들이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8·15 광화문 국민대회’에 참여해 정부와 여당을 규탄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 히틀러의 나치 독재도 경제 부흥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분명 루스벨트의 뉴딜을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히틀러 역시 1933년 독일 총리가 돼 대형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통제로 경제를 부흥시킨 지도자였다. 둘 다 카리스마가 넘쳤고 라디오를 통한 노변대화(루스벨트)나 대규모 군중집회(히틀러) 같은 소통 또는 선전에 능했다는 점에서 비슷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히틀러는 다름을 용납지 않는 전체주의, 과거 정권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광기의 민족주의 선동 등에서 루스벨트와 다르다. 히틀러를 루스벨트와 나란히 비교한다는 게 불경스러울 정도다. 새로운 사회계약을 추진하는 문재인의 한국은 지금 어느 쪽에 가까운가. 문빠의 공격과 문 정권의 보복이 두려워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이달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다. 일부 의원은 휴대전화로 본회의장 전광판에 떠 있는 투표 결과를 기념 촬영했다.

같은 순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민주주의는 죽었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독재로 흥한 자 독재로 망한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했다. 동아일보 DB


● 그들만을 위한 체제변혁은 사회계약 아니다

뉴딜 보고대회에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힘 있게 실천하겠다”고 밝힌 만큼 문재인 정부의 경제 개입은 날로 격해질 것이다. 재정 조달 계획도 없이 한국판 뉴딜에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입하겠다더니 결국 대통령이 한국형 뉴딜펀드라는 관제 펀드 매니저로 나서고 말았다. 사실상 세금으로 원금을 보장해준다는 것도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지만 정부가 택한 산업과 금융에 민간투자를 몰아준다는 건 국가자본주의인지, 국가사회주의인지 헷갈린다.

그리하여 사회안전망 튼튼한 스웨덴 같은 사회민주주의나, 국가가 국민 먹여 살린다는 소련식 사회주의, 아니면 유능한 공산당이 세계 패권까지 노리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간다면 차라리 명쾌하겠다. 무더기 입법으로 살판난 건 집권세력과 연계된 민변, 민교협, 민노총 같은 이념형 이권단체 마피아다. 경제3법 여파로 이들이 뜯어먹을 수 있는 일자리(그리고 일거리)가 무궁무진해진 것이다. 그것도 입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세력은 국민의힘을 무시하고 입법 쿠데타를 감행했다. 국민의 대표가 동의하지 않은 사회계약은 ‘계약’이라고 할 수 없다. 현 집권세력의 장기집권과 부귀영화를 위한 대한민국 변혁은 반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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