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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진중권은 왜 집권세력을 ‘자유주의세력’이라고 했나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0-02-13 17:28수정 2020-02-13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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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진중권의 글을 보는 낙으로 산다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렇다. 13일 한국일보에 쓴 ‘진중권의 트루스 오디세이-기득권이 된 운동권, 진보는 보수보다 더 뻔뻔했다’도 엄지척이다. 단 한 가지, ‘한국사회의 주류가 보수주의 세력에서 자유주의 세력으로 교체된 것’이라는 대목만 빼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동아일보DB

현 집권세력이 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내가 잘못 봤나, 진중권이 잘못 썼나 싶어 다시 봤다. 자유주의 세력이 등장하는 문단을 통째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앞만 보고 걸었는데 사회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사실 탄핵을 기점으로 이 사회에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새 한국사회의 ‘주류’가 보수주의 세력에서 자유주의 세력으로 교체된 것이다. 탄핵 이후 보수는 휘날리는 태극기와 함께 지리멸렬해졌고, 아직도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 사이에 자유주의 세력은 날로 지배를 공고히 했고, 지금도 승리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의 교만한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것처럼 보인다.”


● 현 정부는 헌법에서 ‘자유’를 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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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것이 자유주의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려다 실패하자 중고교 역사교과서에서 기어코 ‘자유’를 빼버렸다. 올해부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치체제를 기존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로 기술했다.

지난해 6월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연 ‘사회교과서 불법조작사태 긴급 좌담회.’ 자유한국당은 이 좌담회에서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의 역사 관련 내용이 무단 수정됐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자유주의는 모든 가치 중에서 자유, 특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국가와 종교,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던 16세기 서양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보다 먼저 등장했다. 이 자유주의가 선거로 대표를 뽑는 민주주의와 19세기 말 발전적으로 통합한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 개인의 선택권 뺏는 전체주의로 가나

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자유주의를 빼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건지, 인민민주주의로 가겠다는 건지는 아직 모른다. ‘자유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 조지 오웰의 명언만 봐도, 문재인 정부와 이 정부를 지지하는 주류집단이 반(反)자유주의세력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우리 신문 기고에서 현 정부의 전반적 성향을 사회민주주의로 판단했다. “사회민주주의의 특성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은 국가의 비대화다. 개인을 신뢰하지 않기에 개인의 선택권을 줄이고 권력을 국가에 집중하려 한다. 경제도 정부가 간섭하고 통제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높은 세금을 통해 평준화를 실현하려 한다.”

작년 여름까지는 사민주의라고 친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한참 더 나갔다. 국민연금을 통한 사기업 지배, 자율형사립고 폐지, 검찰 개악을 포함한 사법부 장악 등을 보면 국가주의, 인민민주주의, 전체주의로 가는 형국이다.

● 민주당 집권했다고 자유주의 세력이냐?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좌파는 ‘자유주의정권’으로 간주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0년 논문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서-한국 ’자유주의정권‘ 10년의 정치’에서 “한국의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진보-보수의 이분법이 부적합하며 대신 한나라당 같은 ‘냉전적 보수’와 민주당 같이 탈냉전적이지만 신자유주의와 시장에 우호적인 ‘자유주의’(개혁)세력,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시장에 비판적인 ‘진보’세력이라는 3분법이 더 적합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노 정부가 민주화운동 출신 대통령이 이끌었고 자유권 확장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세력이라는 데는 동의해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 훨씬 자유주의적이라는 점도 맞다. 그러나 그 연장선에서 문재인 정부까지 자유주의세력이라고 한다는 건 자유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 좌파는 정의당도 자유주의로 본다

한때 정의당에 몸담았던 진중권의 시각에선 현 집권세력이 자유주의세력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진짜 좌파가 쓰는 ‘전문용어’는 보통사람이 쓰는 말과 많이 다르다.

2018년 11월 (좌파)지식인선언네트워크 토론회에서도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좌파정부가 아닌 자유주의정부인데 혹시 지식인이나 진보진영에서는 좌파정부가 집권한 것으로 착각하는 건 아니냐”고 했다. 심지어 ‘사회주의자’라는 인터넷 공간에선 “정의당은 애초 진보가 아니며 자유주의세력”이라고 비판한다.

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이자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인 김정호는 작년 11월 ‘래디앙’에 쓴 글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반동 보수세력’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세력’이라고 적었다.

‘변혁진영’을 자처하는 그들 주장대로 ‘재벌 해체, 공기업화’로 국가를 ‘민주적개조’ 하자는 것은 좋게 말해 인민민주주의, 까놓고 말해 사회주의로 가자는 얘기다. 이런 세력이 주장하는 대로 우파 야당을 반동 보수, 집권세력을 자유주의세력이라고 써줄 순 없다.

● 反자유주의세력 야권통합이 필요

1980년대 등장한, 현재의 집권세력으로 자리 잡은 운동권은 ‘변혁’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1970년대까지의 민주화운동과 구별된다. 이들은 단순히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변혁적 수준의 진보적 운동, 즉 체제를 바꾸는 혁명을 원했던 그들에게 자유주의라는 수식어는 과분하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악수를 나누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동아일보DB

안타깝게도 한국당 같은 우파 정당도 자유주의세력이라고 할 순 없었다. 과거 우파 기득권세력은 자유주의를 반공주의나 자유시장주의 정도로 간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증진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사회적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좌파 자유주의가 진짜 자유주의라고 주장하는 건 너무 나갔다.

그냥 심플하게,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기에 권력 억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국가권력 비대화를 추구하는 현 정부와 주류세력은 결코 자유주의세력이랄 수 없다는 얘기다. 야권이 진정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반(反)자유주의세력에 맞선 통합을 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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