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별자리처럼 연결된 19개의 이야기

  • 동아일보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올가 토카르추크 지음·최성은 옮김/568쪽·1만9800원·은행나무

한 추리소설 애독자가 기대를 안고 새 책을 펼친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도 이야기는 지지부진하고 사건이 일어날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답답해진 그는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한다. 자신이 소설 속으로 들어가 등장인물을 살해하기 시작한다.

201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같은 해 100개가 넘는 각양각색의 여행 이야기들을 엮은 소설 ‘방랑자들’로 인터내셔널 부커상도 수상했던 작가의 초기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독자가 작품에 들어가 살인을 저지르는 독특한 첫 작품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 등 19개의 단편이 실렸다.

작품들엔 다채로운 서술자들이 등장한다. ‘작가’를 화자로 내세우며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탐구하는 메타픽션적 실험이 두드러지는 작품이 있는 한편, 여성이나 농민같이 주류 역사 서술에서 배제된 이들의 삶을 복원하는 작품들도 있다. 서술의 관점과 방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고, 그에 따라 이야기도 다른 형태로 변주될 수 있다는 걸 집요하게 파고든다. 저자는 이 소설집을 두고 “서술자를 훈련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근육을 단련했던, 일종의 체육관 같은 책”이라고 했다.

마지막에 자리 잡은 표제작 ‘여러 개의 북을 두드리며’에선 소설집이 다루는 주제가 극대화된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더 이상 고정된 자아가 아니다. ‘나’는 “마술사가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듯 서로 다른 존재들”을 꺼내며 계속 변신한다. 여러 개의 북을 연주할 때 다양한 음색이 뒤섞이는 것처럼, 화자 역시 다양한 가능성이 혼재된 상태에서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드러낸다. 저자는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말한다.

“세상 도처에 유사성이 존재한다. 그저 관점의 차이일 뿐, 모든 존재는 서로 닮아 있다.”

이 책은 ‘별자리 소설’이라 불릴 정도로 복잡하게 여러 시선과 서사가 교차돼 있다. 그 때문에 작가의 고유한 작법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별을 이어 별자리를 그리듯 언뜻 무관해 보이는 단편들의 연결고리를 발견해 나가다 보면 읽는 맛이 더욱 커진다.

#메타픽션#단편소설#허구와현실#여성서사#별자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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