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한 시대의 흥망과 인간의 각성을 압축하고 있다. 물안개와 달빛이 어우러진 한밤의 진회강, 그 아래로는 은근히 왕조의 쇠락이 흐른다. 시인이 강변에 정박하자 문득 강 건너에서 기녀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후정화’, 남조 진(陳)의 마지막 황제 진후주(陳后主)가 지었다는 가요다. 미녀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린 노래다. 수나라에 멸망되기 직전까지도 진후주가 향락에 탐닉했기에 이 노래에는 줄곧 ‘망국의 노래’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다. 노래에 서린 역사의 비극을 기녀가 알기나 했을까. 그가 아무것도 모른 채 무심코 목청을 돋우었다고 해도 노래를 즐기는 이들이 그걸 몰랐을 리는 없다. 그 비극의 교훈을 알고도 ‘여전히’ 그런 노래에 심취하는 자들의 타락에 시인은 적이 실망했을 테다. 만당(晩唐)의 운세가 저무는 걸 예감한 시인에게 기녀의 노랫소리는 깊은 울림과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노래를 오래전에 끝난 역사 속의 비가(悲歌)로만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역사에 대한 무감각은 언제나 새로운 얼굴로 되살아나는 법이다. 찬란한 불빛 아래에서 들려오는 오늘의 노랫가락 속에도 또 다른 ‘후정화’가 숨어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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