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엔 당근, 좌파는 채찍… 트럼프의 중남미 ‘갈라치기’

  • 동아일보

트럼프의 ‘강온양면’ 중남미 정책
美, 400억弗 ‘통 큰’ 지원에 아르헨 밀레이, 중간선거 승리
엘살바도르에 600만弗 지원… 에콰도르엔 2000만弗 지원키로
베네수엘라-콜롬비아-브라질엔 공습-관세-지원 중단 전방위 압박
마약-反이민 의제로 국내 지지 확보… 中의 중남미 영향력 차단 목적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과거 미국 대통령들이 ‘뒷마당’인 중남미 국가들을 지배하려고 했던 역사적 열망을 되살리고 있다.”(CNN)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새로운 국방전략(NDS)에서 본토 및 서반구 안보를 최우선 순위에 두기로 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중남미 국가들에 대해 상반된 정책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 에콰도르 등에 대해선 ‘내정 간섭’ 논란이 나올 정도로 선거 직전 대규모 지원을 발표하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반면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멕시코 등에는 미국으로 마약을 보내고 있다는 이유로 고율 관세를 때리거나 각종 지원을 끊고 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가 될 때마다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 나라들의 정상들을 비난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갈라치기 전략’은 중남미 각국에서 집권 중인 정부 성향에 따라 나뉜다. 특히 그가 압박 중인 좌파 정부들이 중국과 밀착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의 중남미 국가들에 대한 정책에 중국 견제 의도가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 美, 우파 아르헨-엘살바도르-에콰도르 지원

최근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아르헨티나 중간선거에서 예상을 깨고 승리한 데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있었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페소화 가치와 주가가 급락하며 밀레이의 지지율이 하락하자, 미 재무부는 최대 21억 달러(약 3조 원)에 달하는 페소를 사들였다.

앞서 트럼프 행정부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아르헨티나와 200억 달러(약 29조 원)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고, 200억 달러의 별도 금융 지원을 약속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금융 지원이 밀레이가 이끄는 집권여당 자유전진당이 중간선거에서 승리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힘입어 자유전진당이 선거에서 크게 승리하자, 아르헨티나 안팎에선 내정 개입 논란이 일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남미 마약 카르텔 해체’를 명분으로 대규모 범죄조직 소탕에 나선 엘살바도르, 에콰도르의 강경 우파 정권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미국의 ‘교도소 아웃소싱(외주화)’ 방침을 적극 수용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밀착하고 있다. 미국은 올 3월 600만 달러(약 85억 원)를 주고 미국에 불법 체류 중인 베네수엘라의 마약 카르텔 ‘트렌 데 아라과’ 등 갱단원 260여 명을 엘살바도르의 악명 높은 교도소인 ‘테러범수용센터(CECOT)’에 이송하기로 했다.

에콰도르의 다니엘 노보아 대통령도 강경 보수 성향의 친트럼프 인사다. 2023년 집권한 노보아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마약 밀매 조직을 단속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올 9월 에콰도르를 찾은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노보아 대통령과 만나 2000만 달러(약 280억 원) 규모의 범죄 퇴치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 폭격, 원조 중단, 관세 등으로 반미 국가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반미(反美) 성향이 강한 중남미 국가에는 취임 후 줄곧 압박을 가하고 있다. 최근 마약 밀수를 이유로 미국의 해상 공격을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 선박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9월 이후 베네수엘라 마약 밀수 선박을 공격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만 10차례가 넘는다. 사망자 수는 50명을 넘어섰다.

압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베네수엘라는 자국의 죄수를 미국에 풀었다. 또 베네수엘라에서 들어오는 마약이 아주 많다”며 미 중앙정보국(CIA)의 베네수엘라 영토 내 비밀작전을 승인했다. 이와 함께 미 해군 구축함을 베네수엘라와 인접한 섬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에 배치하고, 공군 폭격기로 베네수엘라 상공을 비행하는 등 무력 시위도 벌였다.

미 법무부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마약 밀매 증거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5000만 달러(약 715억 원)의 현상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9·11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에게 걸렸던 현상금의 두 배다.

콜롬비아도 마약 밀매를 이유로 미국의 압박을 받고 있다. 지난달 19일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에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불법 마약 지도자”라고 썼다.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인 콜롬비아는 그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아 코카인 밀매 차단에 앞장서 왔다. 하지만 2022년 8월 취임한 페트로 대통령이 좌파 성향이란 점이 트럼프의 심기를 건드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올 9월 콜롬비아가 최근 1년간 미국의 대외원조법에 따른 마약 통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지원 중단 결정문을 의회에 발송했다. AP통신은 “미국의 콜롬비아에 대한 지원금은 연간 7억 달러(약 1조70억 원)를 상회했으나, 이번에는 2억3000만 달러(약 3308억 원) 규모였다”고 전했다. 페트로 대통령이 9월 뉴욕 유엔총회에 참석할 당시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참석하자, 그의 미국 비자를 취소하기도 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내가 수십 년간 마약 밀매와 싸워 왔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며 도왔던 (미국) 정부로부터 이런 조치를 받게 됐다”고 했다.

미국의 최대 교역국 중 하나이며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 멕시코도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들과 펜타닐의 미국 유입을 막지 못한다며 각종 관세를 부과했다. 멕시코는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맺은 후 미국과 자국 내 마약조직을 단속해 왔다. 그런데 중도 좌파 성향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앞서 멕시코는 2018년부터 중도 좌파 정권이 집권하고 있다. 현재 미국은 멕시코와 관세 협상 중으로, 최종 타결되지 않은 30%의 관세가 부과될 예정이다.

남미 최대 국가인 브라질도 미국의 50% 고관세를 맞으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도 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이 2022년 대선에서 ‘브라질의 트럼프’라고 불린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을 이기고 당선됐기 때문이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 암살 계획 등 쿠데타 모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보우소나루의 구명 요청을 받은 트럼프 대통령은 “마녀사냥을 당하고 있다”며 브라질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 중남미서 中 견제 목적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멕시코, 브라질 등 유독 좌파 정권에 칼을 겨누고 있다는 것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와 페트로 대통령을 ‘불법 마약 수장’이라고 지목했으나, 싱크탱크 크라이시스그룹에 따르면 미국에서 판매되는 펜타닐의 약 96%가 멕시코를 통해 유입되고 있다.

미국의 중남미 국가 압박을 미중 패권 갈등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압박을 받고 있는 중남미 좌파 정부들이 최근 중국과 밀착하고 있어서다. 콜롬비아는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이었지만 페트로 대통령 취임 후 노선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이 나라는 올 6월 중국의 경제 영토 확장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합류한 데 이어, 중국이 주도하는 신흥 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미 외교매체 더디플로맷은 “중국이 콜롬비아의 구리, 니켈, 코발트 등 광물 자원과 화석연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베네수엘라도 2023년 중국과의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올 5월 중국을 방문한 데 이어 8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선물받은 화웨이 휴대전화를 공식석상에서 꺼내 보이며 “니하오(你好·안녕하세요)” “셰셰(謝謝·고맙습니다)”를 외쳤다. 브라질은 브릭스 등을 통해 중국과 협조하는 가운데, 중국이 미국산 대두(大豆) 수입을 금지하자 중국에 자국 대두를 대거 수출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중남미 외교 행보를 두고 ‘돈로(도널드와 먼로의 합성어) 독트린’이란 평가가 나온다. 1823년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이 유럽에 대해 고립주의를 추구한 반면 중남미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한 외교 정책(먼로 독트린)을 트럼프 대통령이 차용했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트럼프의 중남미 외교 전략이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달 볼리비아 대선과 아르헨티나 중간선거에선 중도 혹은 우파 성향 정권이 승리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처럼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을 계속 압박할 경우, 유권자들의 반미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직면한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이 중국에 더 밀착할 수 있다는 것. 올 5월 이코노미스트와 여론조사기관 프레미스 여론조사에서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국민은 중국이 미국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무역 상대국이라고 답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남미에서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약화하고, 무역 다변화를 시도하면서 중국에 기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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