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잡혀간 80대 노인의 반전, 처벌 대신 몰랐던 ‘치매’ 알게돼

  • 뉴스1
  • 입력 2023년 2월 2일 11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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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위치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모습.  2022.5.19/뉴스1
19일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위치한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의 모습. 2022.5.19/뉴스1
#1. 혼자 살고 있는 80대 A씨는 자신의 거주지 인근에서 총 4회에 걸쳐 이웃들의 승용차를 긁어 흠집을 냈다. 하지만 경찰조사에서 A씨는 폐쇄회로(CC)TV를 보아도 자신이 왜 그 곳에 갔는지, 그리고 갈등이 전혀 없었던 이웃들의 차량을 손괴했는지 사실 자체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A씨의 사건이 검찰에 넘겨졌고 그제서야 A씨는 그동안 자신이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2. 폐지를 수집하며 한 평생 죄를 지어본 적이 없던 60대 B씨는 헬스장 인근에서 폐지를 담는 ‘자루’를 수거해 자전거에 실었다. 하지만 헬스장 주인은 헬스장 입간판을 지지하는 쇠판이 없어지자 B씨가 이를 들고갔다고 생각해 경찰에 신고했다. 정체모를 물건을 자전거에 싣고 가는 모습을 현장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확인한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하지만 검찰은 B씨의 범행이 담긴 영상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영상감정을 의뢰했고 그 결과 쇠판이 아닌 ‘자루’였던 것을 확인했다.

#3. 음주운전을 해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40대 C씨는 법원으로부터 ‘혈중알코올농도 0.03% 이상 음주하지 말 것’이라는 보호관찰 특별준수사항을 부과 받았다. 하지만 직업이 없었던 C씨는 어린자녀를 키우기가 벅차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C씨가 보호관찰 준수사항을 위반하자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조사 결과 C씨가 갱생 의지가 있지만 알코올 의존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검찰이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의 위법 행위에 처벌 대신 관용을 베풀고 있다. 특히 변호사 등의 조력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이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도록 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권현유)는 지난해 하반기 사회적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마음을 담은 법 집행’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웃의 승용차를 긁은 혐의를 80대 A씨가 자신의 범행이 담긴 CCTV 영상을 보아도 기억해 내지 못하자, 관할 구청에 A씨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A씨에 대한 동행 진료 지원을 요청했다. 그 과정에서 검찰은 실질적인 보호자가 없어 자신이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단 사실조차 몰랐던 A씨에게 관련 치료를 지원하고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검사가 형사 사건에 대해 범죄의 혐의를 인정하나 범인의 성격·연령·환경, 범죄의 경중·정상, 범행 후의 정황 따위를 참작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3월에는 폐지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60대 B씨가 헬스장 입간판을 지지하는 쇠판을 자신의 자전거에 싣고 절도를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B씨가 자신의 혐의를 극구 부인하는 점에 귀 귀울여 범행장면이 담긴 영상을 국과수에 영상감정을 요청했고 결국 B씨의 절도 혐의가 없음을 밝혀냈다.

C씨는 과거 음주운전을 한 죄로 법원으로부터 일정 기준 이상 음주를 하지 않아야 하는 보호관찰 특별준수사항을 부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직업이 없는 상태로 어린 자녀를 키워야 하는 C씨 부담감에 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법원의 준수사항을 어긴 C씨는 정식적인 재판에 넘겨져야 했지만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갱생의지가 있는 C씨가 ‘알코올 중독’인 것을 파악했다. 그렇게 검찰은 C씨를 약식 기소하고 알코올 치료를 위한 지원에 나섰다.

약식 기소는 재판을 열지 않고 서면 심리에 의해 재판하는 것을 뜻한다.

검찰 관계자는 “고령층과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는 법률적 조력을 받기 어렵다”며 “자신의 상황을 정확히 해명하지 못하고 정신장애나 중독 증상이 있음에도 범법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 처벌 대신 지자체와 협력해 사건 관계인의 구체적인 사정을 살피고 적절한 치료와 보호, 지원이 이뤄지도록 ‘마음을 담은 법 집행’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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