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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한상준]국회만 외면하고 있는 ‘기술 안보’의 시대

입력 2023-01-25 03:00업데이트 2023-01-2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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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준 정치부 차장한상준 정치부 차장
지난해 5월 20일 취임 이후 최초로 아시아 방문길에 나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첫 방문지로 경기 평택의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택했다. 이어 지난해 8월 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은 대만을 방문해 반도체 기업 TSMC의 전·현직 회장을 만났다. 미 권력 서열 1위와 3위의 아시아 방문 키워드가 ‘반도체’였던 것.

미중 패권 갈등에서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노골적으로 겨냥했다. 2019년 한일 무역 분쟁 당시 일본이 택한 3개의 수출 규제 품목도 명백히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노린 공세였다. 반도체는 이제 산업을 뛰어넘어 외교 안보의 핵심이 됐다.

현재 D램,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1위다. TSMC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의 선두 주자다. 문제는 인공지능(AI) 산업 확대 등으로 수많은 계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이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커지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으로 인해 분기별 매출에서 TSMC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을 앞질렀다.

게다가 반도체를 ‘호국신기(護國神器·나라를 지키는 신의 무기)’로 부르는 대만은 TSMC에 대한 지원을 더 강화했다. 우리의 국회 격인 대만 입법원은 7일 반도체 등 첨단 산업 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대만판 반도체법’을 처리했다.

우리 정부와 국회는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반도체는 국가 안보의 자산이자 우리 산업의 핵심”이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이른바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이 마련됐다. 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을 담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 개정안이 핵심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에 담긴 세액공제율은 8%에 그쳤다. 세수(稅收) 위축을 우려한 기획재정부의 축소안을 여야 모두 별 고민 없이 수용해 버린 것.





반도체 산업은 원가에서 설비 투자가 차지하는 비용이 압도적으로 높다. 단 1년여의 기술 격차는 원가의 20∼30% 차이로 이어진다.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 있는 기업이 막대한 영업이익을 바탕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서 후발 주자와의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 이런 투자에 세제 혜택을 주자는 ‘K칩스법’을 두고 야당 일각에서는 “대기업 특혜법”이라는 반발도 나온다. 하지만 증착 장비 제조, 세정 설비 등 반도체 공정의 전 분야에서 수많은 우리 중소·중견기업이 뛰고 있다.

시늉만 낸 ‘K칩스법’이 통과되자, 윤 대통령은 “국가전략산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제야 기재부는 세액공제율을 최대 25%까지 높인 개정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이 언제 국회를 통과할지 알 수 없다. 여야 모두 다급한 기색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제 막 통과된 법을 또 손봐야 하나”라는 반발 기류도 감지된다. 기술이 산업 분야를 뛰어넘어 국가의 안보를 좌우하는 ‘기술 안보’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는 사실을 국회만 외면하고 있다.

한상준 정치부 차장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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