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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태극전사 보며 탄광 트라우마 치유”… “땀과 눈물 헛되지 않아”

입력 2022-12-06 03:00업데이트 2022-12-06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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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CUP Qatar2022]
‘기적의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 축구
《6일 새벽 ‘영원한 우승 후보’ 브라질과 카타르 월드컵 16강에서 만난 태극전사들은 ‘불가능’이란 편견 앞에 ‘꺾이지 않는 마음’(대한축구협회 트위터)을 간직한 채 경기에 나섰다. 우리 옆에는 태극전사들처럼 “불가능하다” “그게 되겠느냐”며 다수가 고개를 젓는 상황에서 희망을 놓지 않고 기적을 일군 사람들이 있다. 컴컴한 막장에 갇혔다가 열흘 만에 생환하고, 기술 장벽을 넘어 우주의 문을 열고, 죽을 고비를 딛고 미지의 땅에 오른 사람들이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넘어 기적을 써내려간 이들이 동아일보에 한국 대표팀 경기를 보며 느낀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들은 “우리와 한국 대표팀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국민 모두에게 희망을 준 대표팀에 감사하다”고 입을 모았다.》
○ “희망 잃지 않으면 이겨낼 수 있다”


지난달 4일 경북 봉화 아연광산에 매몰된 뒤 221시간 만에 생환하며 ‘봉화의 기적’을 국민들에게 선사한 박정하 씨(62)는 5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어두운 갱도에 갇혀 있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어 새벽에 잠을 청하기 어렵다”면서 “덕분에 대표팀의 경기를 빠짐없이 보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여전히 매주 신경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으며 트라우마와 싸우고 있다. 구조되기 직전 들렸던 환청이 일상생활 중 불현듯 다시 들릴 때도 있고, 처방받은 약을 먹은 뒤 두통으로 신음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박 씨는 ‘희망의 아이콘’으로 언론 등에 나서며 국민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는 “대표팀 선수 다수가 신체적, 정신적으로 몸이 성치 않은 상황인데 대표팀 경기를 보면서 나도 치유받는 느낌이었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표팀의 선전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또 “헤드랜턴 배터리가 소진돼 불이 꺼졌을 때도 혼잣말로 ‘어디서든 빛이 보이면 반드시 살 것’이라고 되뇌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며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일이라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우리는 해내야 했고, 해낼 수 있었다”
1999년 3월 잠실주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평가전. 한국은 이날 김도훈 전 프로축구 울산 감독(52)이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어 브라질을 1-0으로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브라질과 당당히 맞선 후배들을 지켜본 김 전 감독의 감회가 남달랐던 이유다.

김 전 감독은 통화에서 “이번 월드컵을 지켜보니 선수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또 ‘하나의 팀’ 깃발 아래 서로 헌신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 축구가 점차 세계무대에 다가서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간 선배들이 계속해온 도전이 하나하나 쌓여 현재 대표팀 후배들이 성과를 낸 것”이라며 “월드컵에서의 성과가 국내 K리그 선수, 유소년 선수에게도 큰 희망이 되고 있다”고 했다. 또 “선수뿐 아니라 온 국민이 희망을 갖고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덧붙였다.


올 6월 누리호 발사를 성공으로 이끈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고정환 우주발사체개발연구본부장(55)은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태극전사들의 선전과 누리호 연구개발 과정이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고 본부장은 통화에서 “(제가 맡았던 프로젝트도) 국가적으로 큰 사업이었던 데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어 상당히 부담스러웠다”며 “‘항우연이 할 수 있겠냐’ ‘한국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았다”고 회상했다.





고 본부장은 “연구를 지속한 과정은 축구로 치면 골이 나올 때까지 열리지 않는 골대를 두들기는 과정 같았다”며 “그때마다 왜 우리 손으로 우리 발사체를 만들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우리는 결국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구원들을 다독여 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누리호 발사까지 숱한 고비가 있었지만 고비를 넘을 때마다 자신감도 생기고 속도도 붙었다”며 “국가대표팀도 앞으로 쭉 자신감을 갖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 “대표팀과 국민 모두 이 순간 즐겼기를”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으로 세계인을 사로잡은 황동혁 감독(51)은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라 2007년 첫 장편 영화 ‘마이 파더’(관객 90만 명)로 데뷔했다. 하지만 첫 영화가 실패한 뒤 일이 끊겨 만화방을 전전해야 했다. 2009년 ‘오징어게임’ 시나리오를 들고 영화사 문을 두드렸지만 “기괴하고 잔인하다”며 퇴짜를 맞고 10년 넘게 빛을 보지 못했다.

황 감독은 이날 통화에서 “물러설 곳도, 우회로도 없었다. 될 때까지 죽기 살기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흘린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았다면 늘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축구야말로 ‘언더도그’의 반란이 항상 일어나는, 의외성이 가장 높은 경기인 만큼 월드컵 후에도 대표팀이 좋은 결과를 보여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인간 한계에 늘 도전했던 엄홍길 대장(62)도 태극전사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엄 대장은 “선수들이 성치 않은 몸으로 너무 힘든 경기들을 해냈다”며 “팀과 동료를 위해, 국가의 명예를 위해 열정적으로 뛰는 모습을 보면서 (등반) 사고 당시 사투를 벌이며 하산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다”고 했다. 1988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2000년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에 이어 2004년 얄룽캉봉, 2007년 로체샤르까지 올라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에 성공한 그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엄 대장은 “선수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면서도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하게 됐다. 부상 중에도 출전한 손흥민 선수를 비롯해 대표팀의 투지, 의지, 정신력이 대단했다”며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살신성인하는 모습이 큰 감동을 줬다”고 했다.

20년 넘게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은 김혜남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63)도 “브라질이라는 강한 상대와 경기했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를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대표팀, 국민이 재밌는 순간을 즐겼길 바란다”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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