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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민과 군이 합심해 치르는 전쟁[임용한의 전쟁사]〈241〉

임용한 역사학자
입력 2022-12-06 03:00업데이트 2022-12-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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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대첩은 진주성 전투, 한산대첩과 함께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이다. 행주대첩에서 총통, 비격진천뢰 같은 조선군의 화약무기가 맹활약을 했다. 여기에 특이한 신무기가 등장하는데 변이중이 만든 화차이다.

조선의 전통적인 화차는 현재의 다연장 로켓포처럼 신기전을 연속으로 발사하는 무기였다. 변이중의 화차는 신기전이 아니라 승자총통을 사용한다. 수레 위에 3면으로 장갑판을 세우고 여기에 40자루의 승자총통을 설치했다.

변이중의 화차가 행주 전투에서 몇 대나 배치되었고, 어느 정도 활약을 했는지는 전투 기록이 상세하지 않아서 분명하지 않다. 권율은 전투 후에 고산현감 신경회를 선조에게 보내 승리한 소식을 전했다. 신경회는 행주 전투의 양상과 호남의 형편을 전하면서 변이중이 만든 화차의 공을 칭찬하기는커녕 선조에게 병력과 물자 징발 임무를 맡고 파견된 소모사 변이중이 민간에서 소를 너무 징발하고 있어서 걱정된다고 고발한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역사가는 물론이고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도 고민에 빠진다. 변이중의 징발령은 정당한 것일까? 전쟁은 백성들에게 어떤 고통을 얼마나 어디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행주대첩에는 정반대의 미담도 전한다. 여성들이 앞치마로 돌을 날라 전투를 도왔다는 전설이다. 행주치마라는 명칭이 이 전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민과 군이 합심해서 승리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곤 한다. 하지만 행주치마의 전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행주산성에 민간인이 들어오거나 이 전투에 민간인이 심지어 여성까지 참가할 정황이 없었다.

모든 전쟁은 민과 군의 합심으로 치러진다. 다만 행주치마 같은 방식은 아름다운 협력 방식이 아니다. 병사는 전선에서, 백성은 삶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겪고, 함께 이 고통을 이겨내는 나라가 승리한다. 그래서 병사 못지않게 국민정신도 건강하고 고통을 함께하는 의지와 투지가 있어야 한다. 쾌락과 안일함에 굴복한 국민은 전쟁을 이겨낼 수 없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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