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하나 뜯었는데 쓰레기통 꽉 차…이래도 과대포장 아니라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9일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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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적발률 1%도 안 돼
포장공간·횟수 단속만으로는 한계 “선물 문화 바뀌어야”

추석을 열흘 가량 앞둔 28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백화점 식품관. 이 곳에서는 이미 추석 선물 판매가 한창이었다. 스티로폼 재질 받침접시로 과일을 하나하나 포장한 과일선물세트, 여러 영양제를 상자째 넣어 만든 건강식품 종합선물 등은 한 눈에 보기에도 ‘과대 포장’이었다.

기자는 이곳에서 5만 원대 한과세트 하나를 구입했다. 가로 48cm, 세로 41cm 상자 안에 유과 20개, 작은 강정 24개, 약과 8개, 다식 4개, 정과 3개, 매작과 3개가 담겨 있었다. 과자만 꺼내서 한 곳에 펼치니 B4 용지 안에 모두 들어갈 정도였다.

반면 이 과자를 싸기 위해 사용된 포장재 양은 적지 않았다. 크고 작은 플라스틱 용기 18개와 뚜껑 12개, 비닐 4개, 작은 기름종이 4개, 종이박스 1개와 종이커버, 띠지, 종이백, 보자기까지 있었다. 고작 선물 상자 하나를 뜯어 정리했을 뿐인데 분리수거함이 꽉 찼다. 추석 선물로 ‘한과를 산 것인지, 쓰레기를 산 것인지’ 모를 수준이었다.

● 포장공간비율만 낮으면 과대포장 아냐


여기서 문제 하나. 기자가 구입한 한과세트는 과대포장 제품일까? 정답은 ‘아니다’. 백화점에서 본 다른 명절선물세트도 포장 수준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매년 명절 전후로 과대포장 단속에 나선다. 올해도 29일 단속이 시작됐다. 지난해 추석에는 1만1417개, 올 설에는 1만2049개 제품을 점검했는데 적발된 것은 각각 77건과 55건에 불과했다. 전체의 1% 미만이다. 과태료를 부과한 제품은 적발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분명 선물세트 한두 개만 정리해도 가정 내 쓰레기통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나오는데 어찌된 일일까. 이유는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과대포장과 법적인 과대포장 기준 사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과대포장을 판단하는 기준은 △포장 크기 △포장 횟수 △포장재질 등 3가지다. 이들은 모두 법적인 규제 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포장 크기는 전체 제품에서 포장공간이 차지하는 비율(포장공간비율)로 규제한다. 화장품류(두발세정용·향수 제외)는 10% 이하, 가공식품과 세제류 15% 이하, 1차 식품 등 종합제품 25% 이하 등으로 규정돼있다.

하지만 기자가 구입한 한과세트는 플라스틱 상자와 종이 포장재가 내용물(한과) 규격에 딱 맞게 만들어져 있었다. 실제 포장공간비율이 제과류 기준인 20% 이하를 위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제로는 포장재 쓰레기가 많이 발생하더라도 법적으로 과대포장이 아닌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 포장횟수 기준도 예외규정 많아



선물세트 포장횟수는 법에서 대부분 2회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의류만 1회로 제한된다.

그런데 여기도 맹점이 있다. 예를 들어 앞서 백화점에서 본 과일 선물세트에 주로 많이 사용되는 스티로폼 받침접시는 법적으로 포장재 규제를 받지 않는다. 제품을 완전히 둘러쌀 때만 ‘포장’이기 때문이다. 즉 제품을 반만 싸는 받침접시는 포장재가 아니기 때문에 3, 4개씩 싸도 과대포장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

영양제 세트처럼 낱개 포장된 제품을 한데 묶어놓은 세트 제품도 과대포장이 아닌 경우가 많다. 보통 이런 세트 제품은 낱개 포장(1회)에 세트 포장(2회)이 더해지니 포장횟수가 많고 이와 더불어 발생하는 포장재 양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과대포장이 아닌 이유는 세트 제품 과대포장 위반 여부를 따질 때 오직 ‘세트의 포장’만 고려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양제가 플라스틱병(1회)과 종이상자(2회)에 싸여 종합세트 상자(3회)에 포함됐다고 하면 실질적으로는 내용물 포장이 3회 이뤄진 셈이지만, 법적으로는 종합세트 포장을 한 1회만 포장한 것으로 인정된다.

포장재질 규정 역시 재활용이 매우 어려운 소재에만 적용된다. 폴리염화비닐(PVC) 코팅 포장재 같은 소재들은 포장재로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 소재는 규제가 없다.

● 규제만으로는 한계…“과포장 안 만들고 안 사야”


과대포장 기준이 너무 느슨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제품 손상 우려와 업계 반발로 인해 환경규제를 마냥 강화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고민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스티로폼 받침접시와 완충제를 규제하고 재활용이 쉬운 종이재질로 대체하는 것도 고려해봤지만 종이는 식품에서 물이 나오면 찢어지는 문제가 있다며 반대가 거셌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규제도 필요하지만 친환경 포장문화 정착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정부가 모든 포장재와 포장 방식을 규제할 수는 없다”며 “‘쓰레기 없는 선물’이나 친환경 포장재 모델을 선보이는 등 포장 문화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종철 연세대 패키징학 및 물류학과 교수는 “소비자들도 내용물만 주거나 간단히 친환경 포장을 한 물건을 적극 구입해 기업들이 친환경 포장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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