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 관계자를 만났을 때 유독 시간(時間)이라는 단어를 많이 들었다. 첫 번째는 ‘경찰의 시간’이라는 표현이다.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고 장덕준 씨 산재 사고 은폐 의혹’ 사건,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과 무소속 강선우 의원을 둘러싼 ‘공천 헌금 의혹’, 그리고 3대 특검 인계 사건 등 굵직한 사안이 모두 경찰의 손에 달려 있다. 10월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주요 사건을 경찰이 수사하게 될 분위기라, 이 말은 적어도 9개월 정도는 유효할 것이다.
그다음은 ‘수사의 시간’이라는 표현이다. 한 경찰 고위 간부가 최근 꺼내든 화두라고 한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수사로 진실을 가려낼 시간’ 또는 ‘수사로 경찰의 역량을 보여줄 시간’이라는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언론 보도 등으로 시작된 의혹이 고발 등을 통해 수사 단계로 넘어왔으니 수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의지의 표현으로 들렸다.
경찰 수사의 시간은 잘 풀려나가고 있는 걸까. 여야 정치인에 대한 통일교의 금품 제공 의혹 수사는 김태훈 서울남부지검장(55·사법연수원 30기)이 본부장을 맡은 합동수사본부로 중심이 바뀌었다. 경찰이 공소시효가 임박한 ‘쪼개기 후원’ 혐의를 찾아내 통일교 산하 단체 천주평화연합(UPF) 송광석 전 회장이 기소되면서 공범 의혹을 받는 한학자 통일교 총재 등의 공소시효를 정지시킬 수 있었던 건 성과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이 성과보다는 민주당 전재수 의원을 비롯한 전현직 정치인 수사를 향해 있다.
강 의원 측에 공천 헌금 명목으로 1억 원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는 김경 서울시의원의 출국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건 허탈함을 줬다. 김 시의원 출국 당일에야 사건을 배당받았기 때문에 출국금지 등을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는 건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특정 종교 신도들을 대거 입당시켜 올 지방선거 서울시장 경선에서 김민석 국무총리를 지원하려 했다’는 의혹으로 지난해 10월 고발장을 접수해 놓고 석 달이 지난 이달 13일에야 고발인 조사를 한다는 부분은 어떤가. 김 의원 부인을 둘러싼 ‘3000만 원 수수 후 반환’ 탄원서를 지난해 11월 제출받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시간 이야기 중 마지막은 서울경찰청 수사부서에서 근무하는 한 수사 경찰의 이야기였다. 그는 오전 8시를 전후해 출근하고, 오후 10시를 넘어 퇴근하는 날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맞벌이인데, 아직 학교도 가지 않은 자녀를 잘 키울 수 있을지. 그게 수사를 잘하는 것만큼 큰 고민이라고도 했다. 국민적 관심이 몰린 주요 수사가 광역수사단으로 집중되고 있는 걸 생각하면 다른 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리적 시간의 부족은 수사 결과의 질로 직결될 수 있다.
경찰은 다른 분야의 인력을 감축하고, 수사 역량 강화를 위해 1300명을 새로 충원해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력 충원만으로 이 세 가지 시간이 모두 뜻대로 풀리게 될 수 있을까. 인력 확대로 인한 여러 요소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품질도 끌어올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시선은 경찰이 이른바 권력형 범죄를 철저히 수사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을지에 쏠려 있다. ‘결과로 보여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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