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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베이징대 박사가 주차단속 공무원”… 취업난 中 “대졸자 농촌 가라”[글로벌 현장을 가다]

입력 2022-07-07 03:00업데이트 2022-07-07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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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졸업 가운을 걸친 중국 베이징대 학생들이 졸업식 행사를 마친 후 학교 내 추더바(邱德拔) 체육관 계단에 몰려 있다. 중국의 대졸자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베이징대 졸업생들도 지방 말단 공무원을 자청하거나 주차 관련 업무 등을 담당하는 ‘청관’직에 응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취업이 이렇게 어려울지 몰랐습니다. 친구들은 저를 무척 부러워해요.” 지난달 28일 중국 베이징 징마오(經貿)대 인근에서 5일 전 이 학교를 졸업한 가오(高·22)모 씨를 만났다. 그는 졸업과 함께 시내의 작은 출판 관련 국영기업에 입사했다.》

징마오대는 베이징대, 칭화대처럼 중국 밖에서는 유명하지 않지만 현지에서는 상당히 좋은 학교로 꼽힌다. 성적이 좋고 여러 기업에서 인턴 경험도 했던 그는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유명 대기업 혹은 중국에 진출한 서구 기업에 쉽게 취직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마지막 학년을 맞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렸지만 합격하지 못했고 현 직장에 간신히 취업했다고 했다.

가오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취업 공고를 내지 않는 기업이 많다. 졸업 동기 중 아직까지 직장을 구하지 못한 친구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과거 연봉이 높은 민간기업을 선호하던 또래 대학생들이 구직난이 심화하자 안정적인 국영기업 쪽으로 눈을 돌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中 빅테크는 감원 중



4월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올해 대졸자는 1076만 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909만 명)보다 167만 명 늘었다. 2013년만 해도 699만 명이었지만 채 10년도 안 돼 약 400만 명이 급증했다. 기존의 미취업자까지 포함하면 올해 대졸 구직자가 16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고용 시장 전망은 어둡다. 구직사이트 자오핀(招聘)에 따르면 올해 취업시즌(3∼4월) 대졸자의 취업률은 46.7%에 그쳤다. 지난해보다 16%포인트 이상 떨어진 수치로 경기 둔화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은 하반기에는 더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당국이 목표로 하는 올해 경제성장률 5.5% 달성 역시 불가능에 가깝다는 비관론이 득세하고 있다.

이는 중국 특유의 ‘제로(0)’ 코로나 정책에 따라 올 상반기 내내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주요 도시가 대규모 봉쇄를 단행했고, 이로 인해 경기가 악화되면서 많은 기업이 신규 고용 여력이 없는 상태로 내몰린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특히 지난해 내내 당국의 강력한 규제 철퇴를 맞은 정보기술(IT), 부동산, 사교육,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은 상당한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로 인해 텐센트, 바이트댄스, 징둥닷컴 등 주요 빅테크 업체 또한 대규모 감원을 단행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텐센트가 국민 메신저 ‘위챗’ 등을 포함한 핵심사업 분야 직원은 물론 고위직까지 포함된 감원을 연말까지 실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모기업 바이트댄스 역시 상하이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 직원 300여 명 중 절반 이상을 해고했다. 온라인 교육 서비스 관련 부서에서도 3000명을 감원할 예정이다. 앞서 3월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 역시 1만 명을 줄일 계획을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본격화한 전 세계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조짐,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상황 등도 하반기 고용시장 전망을 어둡게 한다. 런민대 고용연구소는 우크라이나 사태, 코로나19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져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실업률 또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5월 도시 실업률은 6.9%로 코로나19가 처음 발발한 2020년 2월(6.2%)을 넘어섰다. 특히 16∼24세 청년층의 도시 실업률은 4월(18.2%)과 5월(18.4%)에 모두 18%대를 기록하며 두 달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취업 질도 악화

취업난으로 인재들의 하향 지원 경향이 뚜렷해지면서 취업의 질도 악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오핀 조사 등에 따르면 대졸자의 상당수가 농민공(농촌 출신 도시 노동자), 배달 종사자보다 더 낮은 급여를 받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무원 열풍도 불고 있다. 기자의 중국인 지인은 지난달 최고 명문 베이징대를 졸업한 양(楊)모 씨가 졸업 후 베이징이 아닌 인근 허베이성 창저우(滄州)의 공무원이 됐다는 사연을 소개했다. 서울대와 유사한 위상을 지닌 베이징대 졸업생들은 대부분 베이징 상하이 선전 광저우 등 4대 도시의 대기업에 취직해 또래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다. 몇 년 전만 해도 베이징대 졸업생이 소도시의 하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 역시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역대급 취업난으로 명문대생 사이에서도 “일단 취업부터 하고 보자”는 인식이 널리 확산됐다고 했다.

지방 공무원 시험도 인기다. 지난달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인구 35만 명인 광둥성 허핑(和平)현이 공무원 채용을 실시하자 베이징대 등 중국 상위 5개 대학 졸업생 및 해외 명문대 석사 700여 명이 이력서를 제출했다. 미 경제매체 포천이 선정한 세계 500대 대기업, 주요 빅테크, 대형 법률회사 등을 가려던 명문대 졸업자들이 낮은 급여를 감수하고 시골 공무원을 자청하고 있다고 SCMP는 진단했다.

4월 베이징 차오양구에서 주차단속 업무 등을 하는 말단 공무원 ‘청관(城官)’을 뽑았을 때도 합격자 중 베이징대 박사 출신, 중국의 대표 외교관 양성기관으로 꼽히는 외교대 졸업생, 영국 맨체스터대 졸업생 등이 포함돼 큰 화제를 모았다.

대졸자 하방 권하는 당국

일자리 대란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우려한 당국은 주요 부처와 관영매체를 동원해 지식인을 시골, 공장 등으로 보내는 ‘현대판 하방(下方)’ 운동을 벌이고 있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 후폭풍으로 일자리가 부족해지자 당시 마오쩌둥(毛澤東)이 1700만 명의 지식인을 농촌으로 내려보낸 것에서 유래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또한 한때 산시성 토굴에서 머무른 하방의 당사자다.

지난달 초 교육부는 대졸자의 농촌 취업을 권장한다며 “농촌에서 창업하면 각종 세금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같은 달 16일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낙후된 서부로 가자는 ‘고웨스트(Go West)’ 프로그램을 보도했다. 하루 뒤 관영 환추시보 역시 귀향한 대졸자들이 농촌에서 어떤 사업을 벌이고 있는지를 상세히 전했다.

당국은 올가을 제20차 공산당 당대회에서 3연임을 노리는 시 주석을 위해 지방정부 동원에 나섰다. 각 지방정부가 지역별 고용 안정 책임제를 도입해 취업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국무원 회의는 “고용 안정을 위한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창업 지원, 농촌 인프라 투자 확대, 미취업 대학 졸업자에게 100만 개 이상의 인턴직 제공 등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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