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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우리 회사 임금피크제 위법인가” 문의 빗발… 노사갈등 우려도

입력 2022-05-28 03:00업데이트 2022-05-2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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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가이드라인 제시 후폭풍
대법원이 26일 단순히 나이를 이유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 뒤 기업들은 정부 움직임과 노조의 추가 소송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법원 판결이 모든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는 취지는 아니었지만 개별 기업 단위로 자사 임금피크제가 위법한지 판단해 달라며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서다. 임금피크제 존폐 여부와 임금체계 개편을 두고 노사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기업들 “노사 갈등 불씨” 우려
27일 재계에 따르면 각 기업 인사팀은 대법원 판결 취지와 후폭풍을 점검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중공업 분야 A사는 판결 직후 인사팀 등 관련 부서가 대응 보고서를 마련해 경영진에게 보고했다. 이 회사는 근로자들에게 임금피크제를 적용한다. 회사 측은 최근 정년 연장을 주장하고 있는 노조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올해 임금·단체협상(임단협)에서 임금피크제 폐지 등을 안건으로 내놓은 뒤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임단협을 진행 중인 현대자동차 사측도 노조가 올해 임금 인상과 정년 연장을 공약한 만큼 임금피크제가 새로운 협상 도구가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나아가 현대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기본급의 10%를 감축하는 현행 임금피크제의 전면 수정을 요구할지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007년부터 노사 공동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금융권도 혼란이 예상된다. 대부분 호봉제를 적용하고 있는 은행들은 임금피크제가 무력화할 경우 인건비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비대면 확산으로 인력 수요가 많이 줄어든 상황에서 임금피크제가 무력화하면 인건비가 늘고 신규 채용도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우리 회사도 위법인가” 문의 잇따라

상당수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고 있는 만큼 대법원의 판결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두고 기업들의 혼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정년제를 운영 중인 300인 이상 기업의 52.0%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들에는 현재 운영 중인 임금피크제에 위법 요소가 있는지 각 기업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경총에 따르면 △직책이나 업무 범위 조정이 어려운 생산직의 경우도 위법에 해당하는지 △대법원이 이야기하는 ‘합리적 이유’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년이 60세로 연장된 2016년 이후 입사한 근로자의 경우 임금피크제 적용이 유효한지 등을 집중 문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KT의 경우 전·현직 직원 1300여 명이 2019년 회사를 상대로 임금피크제가 무효라며 삭감된 임금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냈다. 임금피크제 합의 과정에서 노조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아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취지다. 다른 기업 근로자들도 회사가 운영하는 임금피크제 적법성 여부를 법원 판단에 맡기기 위해 집단으로 소송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울산지방법원은 2020년 삼성SDI 근로자가 낸 유사한 소송에서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늘어난 근로기간에 맞춰 임금 수준을 낮추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며 근로자가 손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어 기업 상황별로 결과가 제각각일 것으로 보인다.
○ 임금체계 개편 가능성도
고용노동부는 27일 “관련 판례 분석과 전문가 및 노사 의견 수렴을 거쳐 현장에 혼란이 없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6년 내놓은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지침을 내놓지는 않을 방침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존 가이드라인이 대법원 판단 기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현장 요구를 파악해보고 기업 불안 해소 방안을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국내 임금체계 전반에 개편 바람이 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임금피크제는 근속연수가 올라갈수록 임금이 많아지는 호봉제 중심 임금체계에서 고령자 고용을 보장하면서 기업 부담을 낮추기 위해 도입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완전 연봉제나 직무·성과에 따라 임금을 받는 임금체계에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판결로 임금피크제 자체가 무효가 된 건 아니지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직무급 중심 임금체계로 개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임금체계의 기본 틀을 바꾼다면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여러 불만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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