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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대학이 ‘혁신 허브’ 되도록, 과감한 재정 투자 필요하다[동아시론/차상균]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입력 2022-04-13 03:00업데이트 2022-04-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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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의 시대, 혁신적 맨파워가 세계 이끌어
글로벌 혁신과 창업의 요람은 대학이다
혁신기업이 다시 대학 돕는 선순환 이뤄야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우리는 세계사적 변곡점을 맞았다. 디지털 대전환, 글로벌 팬데믹, 미중 패권 경쟁, 그리고 기후변화가 몰고 온 급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시기에는 톱리딩하는, 새로운 것을 뚫고 나가는 맨파워가 세계를 이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런 ‘파괴적 혁신자’가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한국은 ‘패스트 팔로어’ 역할을 적절히 하며 경제 몸집을 키워왔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이나 베트남 등 후발주자들이 거의 쫓아온 상황이다. 혹자는 반도체 같은 것이 있지 않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가 앞으로 혁신을 선도할 수 있는지 냉철히 자문해야 한다. 워낙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이다 보니 우리가 앞서 영토를 확보해 놓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향후 먹거리를 위한 세계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우리가 믿을 것은 ‘혁신 인재’뿐이다. 그러나 대기업이 주도하는 연구개발(R&D)은 그 속성상 단기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고, 상품 개발과 향상에 치중하는 경향이 크다.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세상을 바꾸는 기술(transformational technology)’은 최고 수준의 인재와 교수들이 자유롭게 연구하는 대학에서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을 흔히 글로벌 혁신과 창업의 요람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의 연구 현실은 어떤가. 서울대가 매년 정부로부터 받는 국고보조금은 5200억 원 정도지만 대부분이 교수 급여 등 경상비로 쓰인다. 발전기금이 5000억 원 조금 넘지만 대부분 정기 예금이고, 주식과 펀드에 투자하는 규모는 절반도 안 된다. 필자가 재직하는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예산은 연간 6억 원 정도에 불과하다.

서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생 1명당 정부 재정 지원은 유아 지원보다 적다. 2022년 교육부 예산에 따르면 대학에 지원되는 고등교육 예산(11조9009억 원)은 유아·초중등 예산(70조7300억 원)의 6분의 1 수준이다. 대학 교육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턱없이 빈약하다. 지난해 한국의 고등교육 투자는 대학생 1인당 1만1290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인구 8400만 명의 독일 연방정부의 대학 지원 예산은 40조 원 이상 규모다. 인구 5000만 명인 우리나라의 세 배다. 이런 여건에서 한국 대학들이 ‘혁신 허브’가 돼 세계를 선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재정 지원 확대와 더불어 대학이 ‘혁신 허브’로 선순환하는 구조도 만들어가야 한다. 혁신 기업을 배출하고 있는 미국 대학이 예가 될 수 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창업해 100조 원 가치로 성장한 데이터브릭스의 창업자 3명이 각각 2500만 달러를 UC버클리에 기부해 화제가 됐다. 이런 자금으로 새 연구 시설도 짓고, 유능한 교수도 유치한다. 또 다른 데이터브릭스가 탄생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과감한 투자로 혁신을 이끌고, 거기서 나온 혁신 기업이 다시 투자를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우리도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교수와 대학원생, 연구원들이 실험실 벤처로 출발해 기업가치(시가총액) 1조 원짜리 스타트업(유니콘), 10조 원짜리 스타트업(데카콘), 100조 원짜리 기업(헥토콘)으로 진화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스타트업이 수천 명 종업원이 일하는 조 단위 기업으로 성장하면 국부(國富)와 일자리 창출에 숨통이 트이게 된다.

지난 대선 당시 후보 캠프들에서 디지털 인재 100만 명 양성 등이 거론됐다. 우리도 혁신 기업의 필요성, 그리고 대학이 혁신 허브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가야 할 방향이 정해졌다면 빠르고,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 대학의 본부는 리스크와 재원 문제를 검토하느라 움직임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 대학에 재정적 자유가 생기면 자율도 강화되고, 더 혁신적인 사고와 행동에 나설 수 있다. 대학이 원하는 곳에 재정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독립성이 보장되는 지배구조와 체계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대학이 보다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교육 당국이 입시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지금 학생들은 정형화된 문제를 잘 풀고 성적도 좋지만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움직이지 않는다. 혁신적인 인재가 대학에 더 공급돼야 한다. 지금은 과거의 룰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전략적 변곡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 투자와 교육 개혁이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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