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인사이트]산업 넘어 노동-교육계도 “메타버스”… 법-제도 정비 서둘러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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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바꾸는 메타버스 열풍

#1. 지난해 9월 초 네이버제트의 증강현실(AR) 플랫폼 ‘제페토’에 4명의 3차원(3D) 소녀 캐릭터가 등장했다. 인기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의 아바타였다. 가상공간에서 춤을 추고 함께 접속한 팬들과 ‘셀카’를 찍으며 사인을 나눠 줬다. 실물도 아닌 캐릭터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 싶지만, 보름간 열린 행사에는 국내외 팬 4600만여 명이 참여했다.

#2. 독일 바이에른주 잉골슈타트 ‘아우디’ 본사에 가로 15m, 세로 15m 길이의 대형 가상현실(VR) 디자인스튜디오가 들어섰다. 엔지니어들은 이곳의 몰입형 VR로 새 자동차의 실제 버전을 가상으로 경험한다. 디자인, 각종 기능들을 시제품처럼 체크하고 수정하는 작업도 이뤄진다. 아우디는 이를 통해 제작 기간과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지난해 데뷔한 아이돌 그룹 ‘에스파‘. 에스파는 4명의 실제 멤버와 4명의 디지털 휴먼(가상세계 속 아바타)으로 구성된 그룹이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의 진화로 인간과 디지털 휴먼의 공존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SM엔터테인먼트에서 지난해 데뷔한 아이돌 그룹 ‘에스파‘. 에스파는 4명의 실제 멤버와 4명의 디지털 휴먼(가상세계 속 아바타)으로 구성된 그룹이다. 전문가들은 메타버스의 진화로 인간과 디지털 휴먼의 공존이 본격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김성모 산업1부 기자
김성모 산업1부 기자
세계가 메타버스 열풍으로 뜨겁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각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디지털 생활환경’을 뜻하는 메타버스에 대한 주목도가 커졌다. 각종 기반 기술의 등장과 발전은 메타버스 활용을 확산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가상현실의 일상화로 경제·산업 분야의 변화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콘텐츠부터 중후장대까지 메타버스 열풍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세계의 ‘유니버스(Universe)’를 합친 말로 가상세계를 뜻한다. 1992년 미국 소설가 닐 스티븐슨의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인터넷 기반의 가상현실을 표현하는 용어로 등장했다.

의미는 거창해 보이지만 넓게는 온라인의 모든 공간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싸이월드, 인스타그램 등도 메타버스의 일종이다. 최근에는 닌텐도 ‘동물의 숲’, 미국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와 ‘포트나이트’, 네이버제트의 ‘제페토’ 등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로블록스는 미국 9∼12세 어린이의 약 70%가 사용해 미국의 ‘초통령(초등학생의 대통령)’으로 불리고 있다.

기존 온라인 기업들의 움직임은 발 빠르다. 미국 페이스북은 5년 내 메타버스로 사업을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세계 클라우드 서비스 1위 업체인 아마존은 메타버스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서버, 네트워크 등을 구축한 상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메타버스에 접속할 수 있는 기기인 홀로렌즈(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 장치)를 만들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2025년 메타버스 관련 매출이 2800억 달러(약 327조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메타버스가 가장 활발히 활용되는 분야는 콘텐츠·엔터테인먼트다. 지난해 4월 미국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은 포트나이트에서 자신의 아바타로 콘서트를 열어 230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 글로벌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역시 이 플랫폼에서 신곡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가상세계를 ‘핵심 축’으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지난해 말 데뷔한 아이돌 그룹 ‘에스파’는 4명의 실제 멤버와 4명의 ‘디지털 휴먼’(가상세계 속 아바타)으로 팀이 구성됐다.

기업들은 메타버스를 마케팅의 핵심 도구로 활용 중이다. 고가 브랜드 구찌는 제페토 내에 본사 소재지인 이탈리아 피렌체를 배경으로 가상매장 ‘구찌빌라’를 짓고 신상품을 선보였다. 이탈리아 스포츠카 페라리는 내년 출시하는 하이브리드 신차 ‘296 GTB’를 포트나이트에서 최근 공개했다. 현대자동차도 6월부터 제페토에서 쏘나타 N라인의 가상현실 시승 행사를 열고 있다.

메타버스와 거리가 멀 것 같은 자동차, 조선, 기계 등 중후장대 기업들도 실제 차량이나 시설을 가상공간에 구현해 디자인, 설계, 주행 테스트 등 시뮬레이션에 활용하고 있다. 독일 BMW그룹은 올해 4월 가상공장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가상공장에서 부품 위치와 이동 경로, 라인을 변경해 가면서 불량률과 생산효율을 검증한다. 삼성중공업은 실제 컨테이너와 같은 실물 모형을 만들거나 작업자가 높은 위치에 올라 체크해야 했던 품질검사를 3D 스캐닝 기반 가상조립 시스템으로 대체했다.

○ 기술이 판 깔고, 코로나19가 밀어주고


가상세계가 산업 곳곳에 빠르게 스며들게 된 건 무엇보다 이를 구현할 기술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1998년 사이버 가수 1호 아담이 나왔을 때만 해도 몇 분 분량의 공연 하나를 만드는 데 엔지니어 여러 명이 밤을 새워야 했다. 지금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이를 단축시켰다”고 말했다.

과거에 기업들이 메타버스 기술을 구현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뒀다면 최근에는 현장에서 부품, 재고 정보, 공장 가동 현황 등을 파악하고 오류를 최소화하는 효율적인 도구로 메타버스를 마치 PC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처럼 활용한다. 미국 항공사 보잉은 747-8 항공기 배선 작업 공정에 AR를 적용해 작업 시간을 25% 단축하고 작업 오류율 0%를 기록했다. 현실을 가상세계에 유사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활용도가 무궁무진해졌다. 디지털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등장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비대면의 일상화는 이 같은 추세에 불을 붙였다.

○ 또 하나의 ‘평행세계’에 대비하라


전문가들은 메타버스가 진화하면서 노동·교육 환경이 빠르게 바뀔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둔 미네르바스쿨은 물리적인 캠퍼스 없이 모든 학생이 4년간 100%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다. 모든 수업이 비대면 토론 원격 강의로 진행되지만 학생들은 미국, 한국, 인도, 독일, 아르헨티나, 영국, 대만 등 7개 국가 호텔을 기숙사로 이동하면서 생활한다.

김 교수는 “교수는 메타버스를 활용해 수업 운영을 효율화하고 학생은 실무 기반으로 체험한다. 현실 세계와 메타버스의 장점을 효과적으로 융합한 사례”라고 했다. 노동 시장에서도 변화가 예상된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살면서 일하고 싶은 기업에서 근무하는 게 가능해 진다. 한국에 살면서 메타버스로 페이스북 본사에서 근무가 가능해지는 식이다.

3D 개발 플랫폼 업체인 유니티의 김범주 에반젤리즘 본부장은 산업 변화의 격변을 예고했다. “과거에는 흥미 등 일부 목적을 갖고 가상세계에 접속했다면 이제는 그 안에서 물건을 사고 사람을 사귀는 등 일상을 보낸다. 또 하나의 산업이 생겨나는 게 아니라 기존 산업의 판이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메타버스 도입에 따른 변화에 맞춰 법, 제도 등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메타버스상에 구현된 공간에서 노동 규제는 어떻게 할 것인지, 가상공간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세금은 누가 얼마나 어떻게 매길 것인지, 메타버스에서 유통되는 자산의 소유권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지 등 이제까지 없던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고 있지만, 아직은 별다른 논의가 없다. AI 구축에 따른 윤리 문제가 화두가 된 것처럼 가상세계에서 발생하는 폭언, 성범죄 등에 어떻게 대처할지도 여전히 뚜렷한 해법이 없는 상황이다.



김성모 산업1부 기자 mo@donga.com


#메타버스#제도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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