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 여성 이름을 가장 많이 쓴 도시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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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최다… 파리엔 4%뿐
뉴욕, 9·11테러 후 희생자명 많이 써
거리명 보면 그 나라 문화 알 수 있어

프랑스 파리에는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스트리토노믹스 분석법을 활용해 인물의 직업과 성별, 생존연대 등을 색깔로 구분해 나타냈다. 스트리토노믹스 홈페이지 캡처
프랑스 파리에는 이탈리아 천문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스트리토노믹스 분석법을 활용해 인물의 직업과 성별, 생존연대 등을 색깔로 구분해 나타냈다. 스트리토노믹스 홈페이지 캡처
전 세계 도시를 돌아보면 거리 이름에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경우가 많다. 2019년 미국 워싱턴은 미항공우주국(NASA) 본부 앞 거리인 ‘E 스트리트 SW 300’의 이름을 ‘히든 피겨스 웨이(Hidden Figures Way)’로 바꿨다. 1960년대 미국 유인 우주탐사 프로그램에 공헌한 숨은 공로자인 흑인 여성 과학자와 엔지니어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영국 런던에는 윈스턴 처칠 전 총리, 프랑스 파리에는 위대한 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이런 거리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영국 케임브리지 노키아벨연구소와 킹스칼리지 런던대,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독일 뮌헨공대, 덴마크 코펜하겐IT대 연구팀은 거리 이름을 통해 도시의 문화적 가치를 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플로스원’에 1일 발표했다.

‘스트리토노믹스’라는 이름의 이 방법은 거리 이름을 통해 도시와 도시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종교적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사회공학 분석법이다. 거리명에 사용된 인물의 직업과 성별, 생존 연대 등을 정량화해 해당 도시가 중시하는 문화적 가치를 엿보는 방식이다. 연구팀은 서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도시인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 영국 런던, 미국 뉴욕의 4932개 거리명을 분석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도시에 남녀 차별이 있는지, 어떤 직업을 엘리트로 우대하는지, 얼마나 개방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분석 결과 빈은 여성의 이름을 딴 거리가 가장 많은 도시로 꼽혔다. 분석 대상이 된 빈의 거리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54%가 여성의 이름을 따왔다. 오스트리아 출생의 19세기 여성주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헬렌 디너가 대표적이다. 런던도 거리명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로 나타났다. 반면 뉴욕은 26%, 파리는 4%만이 여성의 이름을 가져왔다.

파리는 현대적 수도로 변모하던 1860년대에 큰 가치를 둔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학자이자 철학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 등 이 시기에 활동한 인물들이 거리명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빈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가 다시 성장하던 시기를 살던 인물이, 런던은 1666년 런던 대화재 이후 도시를 재건하던 조지 3세 통치기(1760∼1820년)의 인물이 많았다. 비교적 현대적 도시인 뉴욕은 1950년대 이후 인물이 주를 이뤘다.

네 도시는 공통적으로 예술가를 높이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도시별로 중시하는 직업군에 차이가 있었다. 파리에는 작가와 과학자, 군인의 이름을 딴 거리가 많다. 빈은 법조계 인사와 소방 경찰 등 사회필수인력이, 런던은 왕실과 정치인, 군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뉴욕은 9·11테러 희생자가 거리명의 36%를 차지해 테러에 대한 경각심과 희생자에 대한 추모 정신이 도시가 추구하는 가치에 녹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빈은 거리명에 다른 나라 출신 인물을 쓰는 경우가 45%로 가장 많았다. 나치의 참상을 보여주는 유대인 소녀 안네 프랑크가 대표적이다. 독일에서 태어나 네덜란드에서 숨어살며 ‘안네의 일기’를 썼지만 빈은 그녀를 기억했다. 그만큼 외국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고 있고 외국인에 대해 개방성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반면 국제화된 도시로 알려진 런던은 14.6%, 파리는 10.9%, 뉴욕은 3.2%만 외국인 이름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리오스 콘스탄티니데스 노키아벨연구소 연구원은 “도시의 거리명은 해당 사회가 중시해온 가치를 담고 있다”며 “이를 잘 활용하면 도시의 문화를 연구하고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를 추적할 있다”고 밝혔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거리 이름#여성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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