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하정민]하이에크를 읽던 청년은 왜 반중투사가 됐나

하정민 국제부 차장 입력 2021-06-23 03:00수정 2021-06-2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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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반중 매체 핑궈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가 홍콩 국가보안법이 발효된 지난해 7월 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탁자에 핑궈일보를 둔 채 상념에 빠져 있다. 이 법은 중국에 반하는 활동을 한 홍콩인을 최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라이 또한 이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같은 해 12월 31일 체포됐다. 홍콩=AP 뉴시스
하정민 국제부 차장
“국가가 지옥이 된 것은 나라를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1944년 명저 ‘노예의 길’에서 국가 주도 계획경제의 실상을 고발했다. 나치 독일을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하이에크는 경쟁, 책임, 노력을 거부하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으려 할 때 전체주의가 나타나며 경제적 자유를 잃으면 정치적 자유 또한 사라진다고 일갈했다.

독학으로 깨친 영어로 이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열심히 읽은 홍콩 사업가가 있다. 그는 1947년 중국 광둥성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2년 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으로 집안이 몰락했다. 부친은 홍콩으로 도피했고 부잣집 사모님이던 모친은 사상 개조 명목으로 강제 노역을 했다. 본인 또한 12세 때 더 나은 삶을 위해 낚싯배로 홍콩에 밀입국했다. 아동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 단돈 8달러의 월급을 받으며 섬유 공장에서 소처럼 일했다. 1981년 의류업체 지오다노를 창업해 포브스 기준 12억 달러(약 1조3560억 원)의 재산을 모았다. 바로 홍콩 반중 언론 핑궈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黎智英)다.

어려서부터 공산화의 실상을 목격한 라이가 본격적인 반중 노선을 걸은 시점은 1989년. 그는 중국이 탱크를 동원해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시위대를 진압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유혈 진압을 주도한 리펑 당시 중국 총리를 ‘아이큐가 0인 거북이 알의 아들’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오다노 티셔츠에 ‘우리는 분노했다’는 문구를 새겨 중국을 규탄하는 홍콩 시위대에 나눠줬다. 격분한 중국이 본토의 지오다노 매장을 폐쇄했지만 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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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는 1990년 주간지 넥스트미디어, 1995년 일간지 핑궈일보를 설립해 중국을 비판하는 기사를 빠짐없이 실었다. 2014년 우산혁명,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등 홍콩의 주요 민주화 시위도 주도했다. 홍콩의 주요 반중 정당과 단체 또한 사실상 그의 후원금으로 운영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급기야 지난해 말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보석과 재수감을 반복했고 최근 보석이 불허돼 아직 감옥에 있다. 사주 구속과 자산 동결이란 이중고를 겪고 있는 핑궈일보 또한 26일자 신문을 마지막으로 폐간할 처지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거짓말을 했고 홍콩을 세계로부터 고립시켰다.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법이 없는 중국 공산당의 본질”이라고 질타했다. 중국이 자신을 ‘세기의 매국노’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첩자’라고 혹평하지만 공산당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아야 정치적, 경제적, 도덕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겠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에게 가해지는 신변 위협은 상상 이상이다. 자택 앞 나무에서 사제 폭탄이 터졌고 정체불명의 남성들이 화염병도 던졌다. 살해 협박도 심심찮게 받았다. 74세의 적지 않은 나이, 가족의 안위, 홍콩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 등을 생각하면 그가 질끈 눈을 감거나 서구로 망명해도 뭐라 할 사람이 많지 않다. 그런데도 “사주인 내가 도망치면 직원들이 어떻게 위험을 무릅쓰고 올바른 보도를 할 수 있겠느냐”며 핑궈일보와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강조한다. 언론 자유, 취재 현장에서 위험에 노출된 언론인의 보호를 추구하는 미국 비영리단체 국제언론인보호위원회(CPJ) 또한 21일 라이를 올해 언론자유상 수상자로 선정하며 “그에게 직접 상을 수여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허름한 옷차림, 짧게 깎은 머리로 일관하는 라이의 외양은 조(兆) 단위 부자에 어울리지 않지만 그에게도 호사스러운 취미가 있다. 그는 추상주의와 중국 화풍을 접목한 중국계 미국인 화가 월리스 팅(1929∼2010)의 애호가다. 팅이 남긴 4000점 중 1000점이 그의 소유다. 이런 그가 서구 대부호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건립하고 유유자적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홍콩의 현재를 보면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을 듯하다.

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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