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엇갈리는 기업 공채 바늘구멍은 커져야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상훈 산업1부 차장
이상훈 산업1부 차장
‘공채는 실력 대결. 과감히 도전하라.’

1984년 6월 15일자 동아일보 7면 머리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보험회사, 잡지사 등에 공채로 취업한 기사 속 졸업생들은 취업설명회에서 “어렵다고 포기 말고 공채에서 실력으로 뚫어라” “돈 없고 배경 없어도 공채 붙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사회에 진출하는 가장 크고 넓은 관문이었던 기업 공채. 기업당 많으면 1만 명 이상, 적어도 수백 명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던 한국 고용시장의 대동맥이었다.

몇 년 전부터 하나둘 폐지돼 온 기업 공채는 이제 남은 곳을 세는 게 빠를 정도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기업들은 유연하게 조직을 운영하고 현장 맞춤형 인재를 뽑기 위해 직무 중심 수시채용이 더 낫다고 한다. 높은 최저임금, 까다로운 해고, 비정규직 제한 등 경직된 고용 규제 부담이 크다 보니 웬만큼 매출과 이익이 늘지 않고서는 사람 한 명을 더 뽑기가 쉽지 않다.

기업들은 “공채에서 수시로 방식이 바뀌었을 뿐, 규모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라고 한다. 취업준비생들도 그렇게 받아들일까. 이들에게 공채 폐지는 서운하고 무서운 일이다.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다지만 그래도 ‘대기업 공채 합격’이라는 높은 목표를 잡고 역량을 키워가며 진로를 모색해 왔다. 수시채용이 있다지만 ‘○명 모집’에 수천 명씩 몰리는 현실에 취업준비생들은 고개를 떨군다. 작은 희망이라도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취업준비생에겐 하늘과 땅 차이다.

수시채용이 효율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규모 공채가 사라져야 할 구시대 유물일까. 아니다. 가파른 성장세로 인재가 부족한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저인망식 공채에 나서고 있다. 신입 공채를 연 2회로 늘린 네이버, 상반기 인턴-하반기 공채에 나서는 카카오, 특별 채용과 공채를 동시에 진행하는 넥슨 등이 그렇다.

저성장이 뉴노멀인 지금, 모든 기업이 스타트업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할 순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발목이라도 잡지 말아야 한다. 현실은 어떠한가. 일본 최대 유통기업 ‘이온’이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을 제치고 현지에서 채용 1위 기업에 오를 때 국내 유통 대기업들은 대형마트 출점 제한, 의무휴업 규제에 가로막혔다. 치고 나가야 할 때 성장세가 꺾이면서 결국 일부는 올해 공채 폐지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중소기업 상속세율을 50% 인하하면 일자리가 최대 26만 개 창출될 것이라는 중소기업중앙회 보고서가 무색하게 가업상속 공제는 조건이 까다롭고 한도가 낮아 실익이 거의 없는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다.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가치라면 경제정책의 해답은 간단하다. 공채든 수시든 모든 기업이 1명이라도 더 뽑을 수 있게 규제는 풀고 모든 가용 정책을 동원해 취업 바늘구멍을 넓힐 고민을 해야 한다. 채용 확대 여력이 없어 공채 문을 닫는 기업들을 먼 산 보듯 뒷짐 지며 바라볼 때가 아니다. 일자리가 절실한 청년들을 생각하면 코로나19 확산 등 어려운 환경을 탓하는 핑계는 직무유기다.

이상훈 산업1부 차장 sanghun@donga.com

#기업#공채#바늘구멍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