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들 “대규모 공채는 부담”… 청년 취업난 장기화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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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17.3% ‘상반기 채용 0명’

#1. “가뜩이나 좁았던 취업문이 더 좁아지고 있어요.”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하고 3년째 구직활동 중인 A 씨(29)의 한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채용 공고도 줄었고, 그나마 수시 채용 위주라 취업 준비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한 대기업 수시 채용에 도전했다가 서류전형에서 떨어졌다. 3년 전 정기 공개채용(정기 공채)에 지원했을 때엔 서류전형이나마 통과했던 곳이었다. A 씨는 “비교적 많은 인원에게 인성·적성, 면접 등 기회를 줬던 정기 공채와 달리 직무 중심으로 뽑는 수시 채용은 서류 전형 ‘커트라인’이 높아진 것 같다”고 했다.

#2. “신입사원 한 명을 잘못 뽑으면 그가 정년퇴직할 때까지 20, 30년 동안 회사는 인건비만 들이게 됩니다. 수십억 원의 부담인 셈이죠.”


한 항공사 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이 공채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고속성장 시기에는 인력이 많이 필요해 한꺼번에 많이 뽑고 교육시켜 현장에 투입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경기 부진 속에 코로나19가 겹쳐 대규모 공채는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그는 “필요할 때마다 직무 중심으로 뽑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7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500대 기업 설문조사에서도 ‘코로나발 채용 한파’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올해 상반기(1∼6월) 채용 계획을 수립했다고 답한 응답 기업은 36.4%에 그쳤고 이 중 전년보다 채용을 늘리겠다고 답한 비중은 30.0%에 불과했다.

기업들이 채용에 소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발 경기 부진’(51.1%)이지만 취업시장의 구조적 변화 탓도 감지됐다. ‘고용 경직성으로 유연한 인력 운용이 제한’(12.8%), ‘필요한 직무능력을 갖춘 인재 확보 어려움’(10.6%)을 꼽는 기업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 인력의 고임금 구조를 유지하면서 신입사원을 대규모로 뽑기엔 비용 부담이 큰 데다 산업 패러다임 전환 속에서 인재를 뽑는 기준도 달라졌다는 의미다.

한 5대 그룹 계열사도 올해 경력직 수시 채용을 늘리기로 했다. 이 회사 고위 임원은 “회사가 추진하는 신사업 담당 팀장으로 실제 타깃 소비자와 같은 연령대인 30대를 선임하고 싶었다. 그런데 팀장을 달지 못한 50대 고참 부장이 줄줄이 있어 내부에서 발탁 인사를 하면 반발이 적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었다”며 “내부 인재를 키우기 어려울 바에는 차라리 외부에서 경험 있는 30대 인재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대규모 공채 대신 필요한 인재를 소규모로 확보하는 수시 채용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설문 조사 결과 올해 신규 채용에서 수시 채용을 활용하겠다는 기업은 76.4%로 지난해 조사 결과(66.7%)보다 9.7%포인트 늘었다. 이 중 절반(38.2%)은 수시 채용만으로 직원을 뽑는다.

기업들은 올해 주요 취업 트렌드로 ‘수시 채용 비중 증가’(29.1%)와 ‘경력직 채용 강화’(20.3%)를 꼽았다. 이미 2019년 현대차, 지난해 LG가 정기 공채를 폐지한 데 이어 SK도 내년부터 수시 채용만으로 신입사원을 선발한다. 5대 그룹 중 삼성과 롯데만 정기 공채를 유지하는 상태지만 이들 기업도 사업부별 경력 채용을 늘리는 추세다. 이 때문에 경력이 부족한 청년들의 취업난이 장기적으로 고착화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기업 입장에서는 예비 인력까지 한꺼번에 뽑는 정기 공채보다 수시 채용이 코로나19 등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데 유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대기업들#공채#부담#취업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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