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블록딜 충격’ 뒤에 한국계 빌황… 노무라증권 등 7조원 손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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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차입해 공격적 투자 감행… 실제 투자자 이름 철저히 감춰
美기술주 하락하자 손실 눈덩이… 퇴출됐던 빌황, 영향력 유지 의문
빚 규모 56조원… 후폭풍 클 듯

26일(현지 시간)부터 미국 뉴욕 주식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300억 달러(약 34조 원) 규모의 블록딜(장외 대규모 주식 거래) 사태의 배후가 한국계 미국인 빌 황(황성국·사진) 씨가 이끄는 투자사 아케고스캐피털로 밝혀졌다. 로이터통신 등은 이번 사태와 관련된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의 손실 규모가 최대 60억 달러(약 6조8000억 원)를 넘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12년 내부자 거래로 사실상 월가에서 퇴출됐던 황 씨가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이유에 관한 설이 분분한 가운데 이번 사태의 파장이 장기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황 씨는 실제 투자자를 철저히 감춘 채 대규모 차입으로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는 총수익맞교환(TRS) 거래로 이름을 날렸다. 아케고스 같은 투자사가 투자자 원금에 프라임브로커(PB)의 대출을 끌어들여 투자액을 늘리는 방식이다. 투자자산의 법적 소유자는 PB 혹은 특수목적회사(SPC)여서 외부에서는 실제 투자자를 알 수 없다. PB는 대출 이자와 수수료를 챙기고 자산가격 하락으로 빌려준 돈이 위험해지면 투자사에 추가 담보를 요구하는 ‘마진콜(margin call)’을 발동한다.

아케고스는 일본 노무라증권, 미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 UBS 등 세계 유명 투자은행(IB)을 PB로 삼아 기술주와 미디어주 등을 대거 사들였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유동성 장세 등으로 각국 증시가 호황을 보이면서 큰 수익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중 갈등, 기술주 고평가 논란 등으로 최근 기술주가 하락하자 골드만삭스가 26일 가장 먼저 마진콜을 발동했다. 노무라, CS 등도 뒤늦게 회수에 나섰지만 상당한 손실을 입은 처지다. 노무라의 미국 자회사는 이미 20억 달러(약 2조2700억 원)의 손실을 추산했다. CS, 모건스탠리 등은 손실액을 밝히진 않았으나 역시 상당한 금액이 예상된다. 블룸버그는 아케고스가 빚을 내 투자한 규모가 500억 달러(약 56조71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50대 후반의 한국계 미국인인 황 씨는 고교 시절 목사 아버지를 따라서 미국으로 갔고 1990년대 현대증권에서 잠시 일했다. 월가로 활동 무대를 옮긴 후 유명 헤지펀드 타이거매니지먼트를 이끈 ‘헤지펀드의 전설’ 줄리언 로버트슨의 측근으로 활동했다. 2012년 내부거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리스어로 창시자, 예수 등을 뜻하는 아케고스를 설립해 재기를 노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아케고스의 자산 운용 규모가 설립 초기 2억 달러에서 최근 100억 달러로 불었다고 전했다. 아케고스의 운용 규모가 급증하면서 세계적 투자은행 또한 수수료 수익을 노리고 황 씨와 거래를 재개했다가 화를 입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계 금융계는 자산을 최대한 은밀하게 관리하려는 거액 자산가들이 아케고스 같은 소규모 투자회사를 즐겨 활용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케고스와 비슷한 유형의 투자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아케고스 한 곳이면 특정 투자사가 파산해도 충분히 시장에서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여러 곳이라면 금융계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실제 투자자가 드러나지 않는 TRS 거래의 특성상 피해 금액이 얼마인지를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1920년대 대공황 또한 대규모 마진콜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월가의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 29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또한 IB 관계자들을 긴급히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이은택 nabi@donga.com·김자현 기자
#월가#블록딜충격#빌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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