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태언]성소수자 등장 잦아진 드라마… 희화화로 ‘억지 웃음’ 우려

김태언 문화부 기자 입력 2021-03-29 03:00수정 2021-03-2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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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문화부 기자
14일 방영한 tvN 드라마 ‘빈센조’ 8회에서 빈센조(송중기)와 홍차영(전여빈)이 라이벌과의 싸움에 신광은행장 황민성(김성철)을 이용하는 모습이 나왔다. 홍차영은 빈센조에게 남성 동성애자인 황민성을 유혹할 것을 제안한다. 빈센조에게 첫눈에 반한 황민성은 상대방의 의사와 상관없이 볼에 키스를 하거나 껴안는 애정 표현을 한다. 이를 억지로 받아들이는 빈센조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블랙코미디다운 유머러스한 장면이지만 찜찜한 구석이 있다. 방영 직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불편하다는 반응이 꽤 나왔다. 한 블로거는 “그저 재미로 볼 에피소드는 아니었다. 매력적인 남성이 유혹하면 정신 못 차리고 자신의 일까지 내치는 비정상적인 존재로 동성애자를 그린 건 유감스럽다”고 했다. 다른 시청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덧칠하고, ‘데이트 폭력 가해자’라는 악한 캐릭터까지 부여했다. (빈센조가 황민성을 이용한 뒤 내치는 것에 대해) 악당에게 정의를 구현하는데 무슨 문제냐는 식의 면피용 설정을 뒀다”고 지적했다.

사실 빈센조는 ‘매번 당하는 가난한 피해자’ 같은 틀에 박힌 공식을 깬 드라마다. 그런 빈센조도 깨지 못한 견고한 벽이 성소수자다. 혹자는 황민성은 한 개인일 뿐, 이 캐릭터가 성소수자를 대표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성애자 캐릭터를 희화화하는 건 국내 콘텐츠 내에 성소수자가 많이 다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자칫 혐오감을 부추길 수 있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CJ ENM이 발표하는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의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 종합(드라마·예능) 순위’에서 5위 안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돌아보면 예전에는 성소수자가 극의 감초 역할로 코믹하거나 이상한 인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실적 서사를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tvN 월화극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윤태형(김태훈)은 보수적인 의사 집안 장남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기고 여성과 결혼해 죄책감을 느낀다. 같은 해 JTBC ‘이태원 클라쓰’에선 현이(이주영)가 자신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취를 감췄다가 주변 격려에 힘입어 다시 세상에 나선다. 영화나 웹툰에 비해 성소수자에게 보수적이던 드라마가 점차 바뀌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성소수자의 등장이 많아진 만큼, 이제는 캐릭터의 설정과 표현에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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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문화부 기자 beborn@donga.com
#성소수자#드라마#희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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