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곳 못 찾는 47만 명 임종난민, 내가 누울 자리는?[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1-03-21 09:00수정 2021-03-21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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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임종 준비하는 日 환자 가정 7곳 동행 취재
“2030년, 47만 명 임종 난민 시대”…日 후생노동성의 경고
의료붕괴 우려 ‘정든 집에서 최후를’ 사회적 실험 시작
‘죽음은 자연스런 삶의 한 과정’…죽음관도 바뀌어
시간의 흐름 속에 결과가 정해진 미래가 있다.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는 섭리가 그러하다. 인구 구조도 10년 뒤, 20년 뒤의 사회 모습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지난해 고령화율(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 28.7%를 기록한 일본은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초고령 국가다. 사망이 부쩍 늘어난 ‘다사(多死) 사회’를 맞이했다는 얘기다. 죽음은 개인에게는 한 우주가 사라지는 경험이자 삶의 마침표를 찍는 큰일이다. 하지만 전쟁도 아닌데 죽음이 몰려 닥쳐온다면 어떻게 될까.

5년 전 뇌출혈로 쓰러졌다는 80대 환자가 지바 원장에게 기둥에 의지해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서영아 기자


○다사(多死) 사회, 노인이 많으면 죽음도 많다
일본 인구에서 고령자 비중이 20%를 넘겨 ‘초고령 사회’가 된 해는 2005년이다. 그 이듬해 일본 후생노동성은 ‘2030년이면 연 47만 명이 죽을 장소를 찾지 못하는 임종(臨終) 난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때가 되면 연간 사망자가 160~170만 명이 돼 의료와 간병 시스템이 따라갈 수 없는 상태가 된다는 암울한 전망이었다. 의료비와 사회보장비가 팽창하고, 병원에서도 집에서도 사망 전에 간호를 받거나 임종할 수 없는 사람이 대폭 늘어난다고 내다봤다. 현재는 연간 사망자 130여 만 명 중 76%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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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용어가 된 ‘2025년 쇼크’
이 같은 경고에 놀란 아사히신문 요코하마(橫濱)총국은 이 문제를 지역 사회의 과제로 설정하고 특별취재반을 만들었다. 타겟 연도를 5년 당겨 ‘2025년 쇼크’라는 제목을 붙인 기사 시리즈가 2013년부터 3년간 매주 현지 가나가와(神奈川)판에 연재됐다. 이 지역 고령화율이 전국 평균보다 5년 정도 높고 2025년이 되면 약 700만 명인 ‘단카이(團塊)세대(1947¤1949년생 베이비붐 세대)’가 모두 75세 이상이 되기 때문이다. ‘2025년 쇼크’는 시사용어로 굳어졌다.

일본 정부의 대응 방침은 더 이상 병상수를 늘리지 않는 대신 고령자의 의료와 간병을 지역사회로 돌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지역에서 최후까지’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지역포괄케어시스템’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이밖에도 환자의 요양 병상에 일상의 기능을 더한 ‘재택형 의료병상’이나 홈 호스피스 체제도 확대되고 있다.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노인 절반 이상의 소망은 “최후는 정든 집에서”…현실은?
이 같은 정부 방침은 노인들의 소망과도 맞아떨어진다.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의 50% 이상이 자택에서 임종하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76%가 병원에서 마지막을 맞는다(표 참조). 병원에서 임종을 원한다는 사람 중에는 ‘가족에게 폐 끼치기 미안해서’ 병원을 택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3년간 ‘2025년 쇼크’팀의 취재반장을 맡았던 사토 유(佐藤陽) 기자는 2025년 쇼크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빨리 움직인 곳으로 인구 40만의 도시 요코스카(橫須賀)를 꼽았다. 2011년부터 지자체와 의사회, 병원이 중심이 돼 ‘재택요양연대회의’를 세우고 재택의료를 뿌리내리려고 노력한 결과, 당시 재택임종 비율 22.9%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그는 이 움직임을 이끈 중심인물로 지바 준(千場純) 원장을 소개해줬다.

○“이 병은 낫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을 소중히 누리세요”
2017년 1월 하루 시간을 내 지바 원장의 방문 진료를 동행했다. 오전엔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를 본 뒤 오후에 간호사 1명을 대동하고 일곱 집을 도는 강행군이다. 지바 원장이 경차를 직접 운전하며 환자 가정을 찾아다녔다. 모두가 치료 불가능한 질병 탓에 의사가 자택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재택의료를 받는 환자들이다.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이지만 가는 집마다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를 스스럼없이 받아줬다. 지바 원장에 대한 신뢰가 두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첫 집은 알츠하이머와 류머티즘으로 10년째 누워 지내는 80대 어머니를 40대 초반 딸이 혼자 돌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바이탈 점검하고 혈액을 채취하며 움직이는 동안 원장은 딸을 격려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녀가 밤에 응급 상황이 벌어질 것을 걱정하자 그는 “비상 전화로 연락하라”며 “혹시 일이 잘못되더라도 본인 탓이 아니라는 걸 잊지 말라”고 했다. “어머니는 나을 병이 아니니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에만 신경 쓰라”는 조언도 했다.

○재택의료 위한 지역 네트워크 시스템
다음으로 찾아간 70대 췌장암 환자는 이날이 재택의료 첫날이다. 불과 반년 만에 체중이 절반으로 줄었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치료가 어렵다고 했단다. 환자의 침대 바로 곁에서 부인과 아들 딸, 며느리, 방문간호사와 의료업체 직원, 케어플래너, 지바 원장이 둘러앉아 치료 방법을 상의했다. 재택의료를 위해 지역에 촘촘한 역할 분담 네트워크가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바 원장은 환자 상태를 체크하고 상세한 치료 계획을 세워 나갔다.

“의사 방문은 일단 월 2회로 시작하겠습니다. 방문간호사는 주 2회 오시고, 환자의 목욕도 맡아 주세요. 이를 위한 용구를 의료업체 직원이 준비해 주시고요. 약은 500엔(약 5100원) 정도 내면 배달에 투약 지도까지 해주는 시스템이 있으니 그걸 이용하시면 됩니다.”

가족이 “환자가 통 음식을 먹지 않는다”고 하소연하자, 지바 원장은 “먹는 일 자체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라며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해드리라”고 조언했다. 병세의 진행 과정에 대해 가족에게 설명하고 마음의 준비를 도왔다. “어느 순간부터 엄청난 고통을 호소할 수 있는데 그때는 마약 성분의 진통제를 사용하게 된다”는 말에 가족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자택에서 임종을 치르기로 한 혼다 씨(침대에 누운 사람)와 그를 돌볼 계획을 짜기 위해 모인 가족과 간호사, 케어플래너들. 가운데 앉은 사람이 지바 원장. 서영아 기자


○재택임종을 결정한 가족의 표정은 의연하지만 밝았다
환자가 집에서 임종하겠다는 뜻이 워낙 강해 가족들은 재택임종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일단 각오를 하고 나서인지 환자도 가족도 분위기가 밝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 수십년 전 환자 부인이 시부모님의 임종을 집에서 치렀다는 얘기가 나오자 누워있던 환자의 표정이 유달리 환해졌다. 믿음직한 부인에게 최후의 나날을 맡길 수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랄까, 자신감이 피어난다.

지바 원장은 느닷없이 가족에게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는 언제냐, 가족과의 좋은 추억은 뭐냐”고 묻고, “그 시절 얘기를 아버지와 많이 나누라. 생기가 돌아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버지와의 매일을 소중히 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신문에 싣기 위해 최소한의 ‘그림’이 필요했던 기자가 미안해하며 사진 한 장만 찍겠다고 양해를 구했는데, 모두가 즐거워하며 포즈를 취해 깜짝 놀랐다. 사진에도 드러나듯 병상에 누운 환자도 웃는 얼굴을 지어보였다.

○“난 내년이면 여기 없을 거니까…”
다음 집. 오늘 내일 죽음을 예약한 65세 여성의 일상도 여느 때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6개월 전 위암 수술을 받았지만 뼈에까지 전이됐고, 여명 6개월을 선고받았다. 막내딸과 강아지 두 마리와 지내는 환자는 “때가 왔는데도 별 변화 없이 잘 지내고 있다”며 “내년 이맘때면 난 여기 없을 테니까. 남편도 부모도 다 저 세상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외롭지 않다”고 스스럼없이 말했다. 문득 혼자 남겨질 막내딸(24)을 쳐다보더니 “이 아이도 장래를 약속한 남자 친구가 있어 걱정할 게 없다”고도 했다. 딸도 덤덤하게 엄마의 말을 들었다. 지바 원장은 “그래도 자꾸 움직이시라. 종교에 기대는 것도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도움이 된다”며 일상의 자잘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왕진을 위해 나서는 지바 원장과 간호사의 뒷모습. 서영아 기자


○팽창하는 의료비 억제 위해 ‘병원에서 지역으로’ 내건 日 정부
저녁 무렵 들른 60대 독신 여성은 좀 걱정되는 경우였다. 지바 원장과 현관문을 여니 문간에 여성이 누워 있었다. 한번 쓰러지면 자력으로 일어날 수가 없어 그냥 누워 있었다는 건데, 친척이 다음날 아침 들르기로 돼 있다고 했다. 일단 침대까지 옮기고 친척에게 밤에 들르도록 연락을 취하게 했다. 우리 방문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밤새 바닥에 누운 채 있어야 했던 상황이다. 이 여성은 병원에 입원한 지 이틀만인 그날 반 강제로 퇴원했다고 했다. 의료재정 감축을 위해 병상을 졸라매는 일본 의료의 차가운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일곱 곳 왕진을 마치기까지 오후 1시부터 7시간이 걸렸다.

○“사람은 언젠가는 떠나야 합니다”
지바 원장의 재택의료는 일종의 방문 호스피스였다. 지바 원장은 노환이나 불치병 환자와 가족에게 “이 병은 낫지 않는 병”이라고 담담하게 말해준다. 질환을 다스리되 남은 기간 삶의 질을 유지하고 고통을 줄이는데 더 무게를 둔다.

그래서 집집이 돌며 환자와 가족에게 “무조건 낫게 해야 한다는 생각,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떠나야 하니 적절한 때에, 편안하게 가시게 하는 게 최선”이라는 얘기다. 떠나는 환자와 남겨질 가족에 대한 배려가 담긴 이런 말들이 모두에게 묘한 편안함을 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일본 사회 전반에 죽음이 흔해지면서 사회 전체가 죽음에 대한 태도를 새롭게 하는 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재택의료 환자들 대부분이 연명치료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리빙윌’을 작성한다고 한다.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할 경우에 대비해 연명치료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이에 따른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서명해 두는 것이다.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적힌 환자수첩. 본인과 가족이 서명했다. 응급상황에 대비해 환자의 집 눈에 뜨이는 곳에 비치해둔다. 서영아 기자


○한국의 고령화, 일본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속도는 빨라
지난해 한국의 출생아는 27만2400명, 사망자는 30만5100명으로 인구는 3만3000명 자연 감소했다. 일본의 경우 출생아는 2019년 86만5000여 명, 사망자는 130만 여 명이 넘어 연간 43만여 명이 줄었다(2019년 기준).

한국은 일본보다 출발은 늦었지만 고령화 속도는 더욱 빠르다. 인구 중 고령자가 7% 이상인 ‘고령화 사회’에서 20%인 ‘초고령 사회’로 들어가는 데 일본이 35년(2005년 도달) 걸렸는데 한국은 25년(2025년 예정)만에 도달할 전망이다.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빨랐다는 일본을 약 20년 늦게 맹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로 같은 과정에 독일은 77년(2007년 도달), 프랑스는 143년(2008년 도달), 미국은 88년(2033년 예정) 걸린다.

한국에서는 아직 임종 난민같은 고민은 생겨나지 않고 있지만 고령화율이 높아질수록 사망의 절대 숫자는 커지게 된다. 일본에서 초고령 사회 돌입 1년 뒤에 임종난민 경고가 나온 것을 떠올려보면 한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2025년 무렵에 비슷한 경고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대비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죽음은 삶의 자연스런 과정
대가족 시절 집안에서 노인이 앓아누우면 가족이 간병하고 사망하면 집에서 장례를 치렀다. 사회와 삶 속에 죽음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죽음을 병원 안에 가둬 사람들의 일상에서 단절시켜버렸다. 환자가 병원에 옮겨지는 순간 죽음은 보이지 않게 된다.

병원에서는 사망 과정에 들어간 죽음도 무조건 ‘치료’의 대상이 될 뿐이다. 입으로 음식을 삼키지 못하면 위에 구멍을 뚫거나 코 줄로 영양을 공급하고 숨을 못 쉬면 목에 구멍을 뚫어 산소를 공급한다. 수십 개의 줄을 연결해 내일 죽을 사람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몇 달이고 살려두는 일도 벌어진다.

대부분의 경우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단계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많은 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2~3일 앓다가 저세상으로 간다는 뜻의 ‘구구팔팔이삼사’가 노인들의 로망이라고 한다. 그만큼 죽음으로 가는 과정은 힘들고 지난하다. 나와 내 가족은 이 과정을 어디서 어떻게 진행할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듯하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인생 후반, 더 중요해지는 ‘돈 건강 행복’
풍요로운 100세 인생을 맞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돈과 건강, 그리고 행복입니다. 이 모든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갖춰지는 게 아니고 30~40대부터 차근차근 조금씩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100세 카페’에서는 특히 인생 2막을 잘 맞이하기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야 할 돈과 행복 이야기를 나눕니다. 초고령사회의 최일선을 걷는 일본 사례를 많은 참고로 삼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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