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당선 길지로, 전통 명당으로… 캠프위치 보니 전략이 보이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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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대선-보선 캠프의 정치학

내년 3월 9일 치러지는 차기 대선이 다가오면서 여야 대선 주자들도 본격적인 둥지 마련에 나섰다. 각 당의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는 아직 막이 오르지 않았지만 일찌감치 캠프를 마련하고 채비에 나선 것.

특히 대선 주자들의 초창기 대선 캠프는 청와대 입성 뒤 ‘정권 실세’로 직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평가 받기 때문에 정치권의 관심 역시 크다. 여기에 캠프의 위치 또한 각 주자의 대선 전략과 맞닿아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 文의 ‘광흥창팀’ 벤치마킹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주자들 중에서는 이낙연 전 대표가 가장 먼저 사무실 준비를 마쳤다. 이 전 대표 측은 일찌감치 서울 마포구 광흥창역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이를 두고 여권 내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벤치마킹하겠다는 의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문 대통령은 2016년 광흥창역에 초창기 캠프를 마련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주축이 된 이 캠프는 ‘광흥창팀’으로 불렸고, 10여 명의 광흥창팀 팀원들은 2017년 5월 대선 승리 뒤 청와대로 곧바로 직행했다. 한 친문(친문재인) 인사는 “광흥창 지역은 여의도 접근성이 뛰어나면서도 임차료는 훨씬 저렴하다”며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 등이 많은 국회 인근에 비해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고 전했다.

이 전 대표 역시 광흥창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대선 레이스 준비에 착수했다. 이미 이 전 대표는 이곳에서 지지 의원들을 비롯해 대학교수 등과 활발한 정책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 전 대표의 ‘이익공유제’ ‘신복지체계’ 등도 이곳에서 탄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 대표 측은 “앞으로의 정책 공약 등도 광흥창에서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도전 선언 시점을 고민하고 있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기반 지역은 광화문이다. 집무 공간인 정부서울청사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화문이 포함된 종로는 정 총리의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였다. 특히 종로구 소재 삼청동 총리공관은 정 총리가 의원들과의 접점을 늘려가는 공간이다. 정 총리는 여야 지도부는 물론이고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의원들을 공관으로 초대해 교류하고 있다.

정 총리의 핵심 지지 기반인 ‘광화문포럼’ 역시 광화문에서 명칭을 따왔다. 정 총리가 17대 국회의원 시절 만든 공부 모임인 ‘서강포럼’의 후신으로, 50여 명의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정 총리와 가까운 한 의원은 “광화문포럼 내에서 정 총리 대선 지지 선언을 해줄 수 있는 의원이 20명 정도 된다”며 “포럼 이름을 바꾼 것도 지역 상징성을 더해 사실상 캠프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경기 수원에 있는 도지사 공관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재명계’로 분류되는 의원들뿐 아니라 초선 의원, 경기지역 국회의원 등 다양하게 의원들과의 접촉면을 늘려가고 있다. 이 지사가 초대하지 않아도 먼저 이 지사 측에 연락해 공관을 찾는 인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 측 관계자는 “당내 지지 기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향후 캠프를 꾸릴 때에도 본진은 경기도에 두면서 여의도에서 실무를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캠프가 입주한 건물의 명칭이 ‘실세 조직’의 이름으로 변모하는 경우는 2002년에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의도 국회 앞 금강빌딩에 캠프를 차렸고 이광재 의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등 핵심 측근들은 자연스럽게 ‘금강팀’으로 불렸다.

2017년 대선에 도전했던 안 전 지사는 금강빌딩에 캠프를 꾸리려 했지만 빈 사무실이 없어 실패했다. 결국 안 전 지사 측은 당시 ‘금강’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입주해 있는 다른 건물에 캠프를 꾸리기도 했다.

○ 야당은 ‘명당’ 여의도 선호

제1야당인 국민의힘 소속으로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한 유승민 전 의원은 지난해 11월 서울 여의도 태흥빌딩에 ‘희망22’ 사무소 개소식을 열었다. 당시 유 전 의원은 ‘결국은 경제다’를 주제로 ‘주택 문제, 사다리를 복원하자’ 토론회를 열어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해 전·현직 의원들이 다수 참석해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다. 유 전 의원은 “2022년에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정권 교체를 꼭 해내겠다는 희망”이라며 ‘희망22’라고 붙인 캠프 이름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이곳은 2017년 19대 대선 당시 바른정당 중앙당사가 있던 곳이라 유 전 의원으로서는 절치부심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야권의 또 다른 대선 주자인 원희룡 제주도지사 역시 올해 하반기 무렵 여의도 인근에 대선 캠프를 꾸릴 예정이다.

보수 정당에서 배출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여의도에 대선 캠프를 차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여의도 용산빌딩에 매머드급 캠프를 구성해 당선됐다. 당초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안국포럼’ 사무실을 열었던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5월 대선 경선을 앞두고 용산빌딩 2개 층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이 전 대통령 캠프는 안국포럼 실무진은 물론이고 18대 국회의원 다수가 상주할 수 있는 공간까지 갖출 정도로 컸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기세도, 자금도 넉넉하다는 걸 과시하려는 의도도 담겼을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여의도 대하빌딩 5, 6층에 캠프를 차렸다. 이곳에서 함께 일했던 실무진 30여 명이 취임 직후 초창기 청와대 멤버로 입성하면서 대하빌딩이 ‘청와대 출입문’이었다는 말까지 나왔다.

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국회에서는 “역시 대하빌딩이 최고의 명당”이라는 말이 다시 회자됐다.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하빌딩에 캠프를 차려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조순 고건 전 서울시장도 시장 선거 캠프를 대하빌딩에 꾸렸다.

별도의 공간에 캠프를 구성하는 문화는 1997년 신한국당(현 국민의힘) 경선 때부터 시작됐다. 이회창 후보를 비롯해 ‘9룡’이 치열하게 격돌하면서 외부에 캠프를 꾸리기 시작했다. ‘정치 1번지’로 불렸던 종로가 당시에는 인기를 끌었지만 2002년 대선부터는 여의도가 캠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소속 한 의원은 “과거에는 풍수지리를 많이 따졌지만 최근에는 후보마다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초기 단계는 캠프 위치가 그리 중요하지 않지만 본격적인 경선 모드에 돌입하면 정치의 중심인 여의도로 캠프가 집중된다”고 말했다.

○ 당사 위치도 정치적 메시지

각 당사의 변천사도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은 2002년 대선 당시 불법자금으로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쓰자 2004년 여의도공원 건너편에 ‘천막 당사’를 두는 승부수를 던졌다. 비슷한 시점에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역시 임대비 논란이 불거지자 영등포 청과물시장 내 폐공판장으로 당사를 옮겼다. 이에 따라 2004년 17대 총선은 ‘공판장 당사’와 ‘천막 당사’ 간 대결로 불리기도 했다.

여의도에 있는 현 민주당 당사는 내부에서 “기운이 좋은 곳”으로 꼽힌다. 2017년 당사 건물을 아예 구입했는데 이후 대선과 지방선거, 총선에서 연이어 승리했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상당한 액수의 대출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건물 구입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며 “하지만 이후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당사 가치도 크게 올랐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0월 여의도 남중빌딩에 둥지를 틀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패배한 뒤 영등포로 당사를 옮겼다가 2년 만에 여의도로 돌아온 것. 이는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변화해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에 따른 것이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당시 현판식에서 “국민 신뢰를 다시 회복해 보궐선거와 대선에서 정권을 찾아온다는 각오로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동준 hungry@donga.com·강경석 기자
#전통 명당#캠프위치#文벤치마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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