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대목은 옛말”… 재고만 수만장씩 쌓인 태극기 제조업체들

전남혁 기자 , 이지윤 기자 , 이윤태 기자 입력 2021-03-01 03:00수정 2021-03-01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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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타격-저가 중국산 여파 ‘이중고’
28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태극기 제조업체에서 업체를 운영하는 이면식 대표가 창고를 가득 채운 태극기를 살펴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3·1절 행사가 대부분 취소되며 관련 업계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래도 3·1절, 광복절엔 태극기를 찾는 분들이 좀 있었는데, 올해는 정말 한 개도 팔리질 않네요.”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국기·깃발 판매업체. 사장 김모 씨(52)는 “오늘도 손님이 한 명도 찾아오질 않았다”면서 “올해 들어 태극기는 하나도 팔아보질 못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동안 가게에 머물렀지만, 문의를 하려고 잠시 들르는 고객조차 없었다.

“그래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죠. 국경일이면 일주일 전부터 태극기를 찾는 시민이 꽤 있었어요. 하지만 코로나19 이후엔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어요.”

한반도를 가득 메웠던 독립만세의 함성을 기념하는 3·1절을 맞았지만, 주인공 ‘태극기’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오프라인 행사를 대부분 중단하면서 관련 업체들은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여러 집회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태극기는 저렴한 ‘중국산’이 대부분이라 국내 제조사들엔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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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찾아간 서울 서초구의 한 태극기 제조업체는 이런 휑한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1990년대부터 태극기를 제조해왔다는 이 업체의 창고에는 약 4만5000장의 태극기가 갈 곳 없이 쌓여만 있었다. 한때 국경일이 다가오면 40∼50대의 재봉틀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광경은 이미 오래전 일. 이면식 대표는 “3·1절은 물론이고 제헌절 광복절 등이면 단체 주문이 밀려와 정신이 없었지만, 올해는 아예 공장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며 “매출이 80% 이상 줄어들어 직원을 내보내야 한다. 사무실도 없앨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태극기 업계가 타격을 입은 건 단지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저가의 중국산 태극기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도 골칫거리다. 특히 집회에서 시민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작은 크기의 태극기는 집회 측이 비용 절감 차원에서인지 중국산을 선호한다고 한다.

한 태극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은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라 엄격하게 태극기를 만들다 보니 제작비용이 아무래도 높을 수밖에 없다”며 “중국산은 제대로 규격도 맞지 않지만, 관공서와 달리 이를 지킬 필요를 못 느끼는 민간에선 많이 선호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자신들이 피해를 입는 것도 문제지만 갈수록 중국산만 찾다 보면 “더 이상 국기(태극기)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가 될 수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종로구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래원 씨(77)는 “중국산 태극기는 원단 재질과 마감 처리도 떨어지지만, 태극기 건곤감리가 잘못돼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체를 운영하는 정구택 대표는 “제대로 만들어진 국산 정품의 태극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태극기를 이용하는 의미가 퇴색되지 않겠느냐”고 답답해했다.

“일반 가정의 태극기 구입도 크게 줄었어요. 한 지인에게 물었더니 언젠가부터 태극기 하면 일부 집단의 ‘정치적 상징’처럼 돼버려서 스스럼없이 바깥에 내다 걸기가 어색해졌다고 하더군요. 우리가 지키고 자랑스러워해야 할 태극기가 이런 대접을 받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줬으면 좋겠습니다.”(A 태극기 제조업체 대표)

전남혁 forward20@donga.com·이지윤·이윤태 기자
#3·1절#대목#옛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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