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2021/시나리오]‘소년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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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소감

고되게 버티는 아이들에 대한 먹먹함
임형섭 씨
임형섭 씨
영화 조감독을 마칠 무렵 우연히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예술고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그렇게 영화를 꿈꾸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애들답지 않다고 하지만 제가 만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고 활기찼으며 착하고 예의 발랐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시나리오를 통해 어른들 때문에 생긴 이런저런 일로 자기보다 큰 바윗덩어리들을 껴안고 지낸다는 사실을 엿보게 되었습니다. 한없이 밝고 쾌활해 보이는 아이들이 실은 하루하루를 고되게 버티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강릉 여중생 폭행 사건이 터졌습니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그 사건은 별다른 사회적 성찰도 없이 소년법 개정 논의로 이어졌습니다. 저는 갈수록 잔인해지고 흉악해지는 청소년 범죄가 실은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는 생각에 ‘소년범’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시나리오를 좋게 봐주신 동아일보사와 심사위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저의 ‘오춘기’를 함께해준, 사랑하는 예고 제자들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남깁니다.

△1982년 서울 출생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 △‘조난자들’ 조감독

● 심사평

상처받은 아이들 내면에 들어가서 쓴듯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주필호 씨(왼쪽)와 이정향 씨.

당선작을 내는 데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두 심사위원의 선택이 같았기에 이견이나 재고 같은 단어가 나설 일이 없었다. 하지만 별로 뿌듯하진 않았다. 당선작과 2등의 간격이 너무 넓어서다. 결선에 오른 작품들이 심사위원을 괴롭힌다면 그건 우열을 가리기 힘들거나, 당선작이 못 된 작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때가 바람직하다.

하지만 올해에 맛본 괴로움은 다르다. 열 편의 결선 작품을 읽어나가며 당선작을 못 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다행히 ‘소년범’을 만났다. 날것의 생생한 대사와, 마지막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만드는 구성이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다. 상처받은 아이들의 심리가 돋보였다. 아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봤다기보다 그들의 내면에 들어가서 쓴 듯했다.

‘화사한 현자의 가을’은 좋은 주제에 재미난 설정인데도 겉만 핥고 지난 듯 매력이 없고, 안타까우리만큼 편하고 쉽게만 흘러갔다. 아깝다. ‘친애하는 나의 적’은 솔직히 말하면 반가웠다. 벌써 여러 번 만났다. 해마다 조금씩 다듬어지기에 우리 심사위원들도 관심 있게 보게 된다. 내년에도 심사에서 만난다면 민기의 활약상이 축소되길, 살인을 저지른 형사가 죄책감을 좀 더 갖기를, 결정적인 위기마다 유치한 상황으로 모면하는 설정을 진지하게 바꿔보길 바란다.

시나리오는 영화화가 목표다. 그러지 못한 시나리오는 완성품이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들은 머릿속에 스크린을 펼치고 영사기를 돌려야 한다. 그렇게 쓴 글이 실제로도 극장에 걸린다.

이정향 영화감독, 주필호 주피터필름 대표

#동아일보#신춘문예#시나리오#소년범#임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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