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반대파 탄압-평화 역주행… 수상자들 돌변에 얼룩진 노벨상

이설 기자 , 조종엽 기자 입력 2020-12-05 03:00수정 2020-12-0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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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잡음… “노벨상이 왜 이래” “노벨위원회의 수상자 선정 과정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4일 “최근 30년간 노벨평화상 수상자 중 재평가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 최소 6명”이라며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지만 최근 반대파 티그라이족 탄압에 나서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44) 등의 사례를 거론했다.

노벨상 6개 분야 가운데 성과가 구체적인 다른 부문과 달리 평화상은 객관적 평가가 힘든 데다 정치인이 수상한 사례가 많아 정치 성향, 가치관 등에 따른 찬반양론이 종종 제기돼 왔다. 선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상자의 이후 활동에 대한 점검 등 꼼꼼한 사후관리가 잇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수상자가 노벨상의 취지에 어긋나게 행동하면 상을 박탈하는 방안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평화상 수상자들의 얼룩진 이면


아머드 총리 사례에서 보듯 평화상 수상자들은 수십 년 전부터 각종 논란에 휩싸였다. 베트남전 종전 협상을 주도한 공로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97)과 북베트남 지도자였던 레득토(1911∼1990)는 1973년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레득토는 “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전쟁 중 키신저가 캄보디아와 라오스 국경에서 수많은 민간인 피해를 야기한 폭격 작전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선정위원 두 명 역시 키신저의 수상에 반대하며 사의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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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신저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냉전 시절 미국이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등을 지원하며 칠레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는 과정에 그가 관여했다는 주장도 있다. 유명 저술가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는 저서 ‘키신저 재판’에서 “키신저는 전쟁범죄자로 국제 법정에 세워야 한다”며 “키신저를 기소하지 못하면 ‘어떤 거대 권력도 법을 초월할 수 없다’는 원칙이 침해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4년 수상자인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1929∼2004)도 논란에 휘말렸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PLO를 합법 정부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오슬로 협정이 중동 평화에 기여했다며 그를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함께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아라파트의 반대 세력은 그가 장기간 폭력을 행사해 온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다며 맹비난했고, 심사위원 한 명 역시 그의 수상에 반대하며 사의를 표했다. 아라파트는 PLO 설립 전 항공기 납치, 주요 시설 파괴 등 대이스라엘 무장 투쟁을 주도했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수상 이후에는 부인 수하 여사의 호화스러운 생활 등으로 PLO 공금 유용 의혹에 휩싸였다.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이뤄낸 공로로 1991년 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75)의 행보 또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미얀마군은 2017년부터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학살하거나 탄압해 7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하며 집권한 수지 고문은 로힝야족 문제에 침묵하거나 군부를 두둔하는 태도를 보였다. 여전히 미얀마의 실권을 상당 부분 거머쥐고 있는 군부를 의식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 해도 본인이 평생 목표로 삼은 가치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국제앰네스티 등 유명 인권단체들이 수지 고문의 수상 자격 박탈을 주장하는 이유다.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협정을 이룬 공로로 1978년 공동 수상자가 된 안와르 사다트 전 이집트 대통령(1918∼1981)과 메나헴 베긴 전 이스라엘 총리(1913∼1992)의 수상 역시 논란의 대상이다. 베긴 총리는 1982년 레바논에서 활약하는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 침공을 단행했다. 바로 이때 이스라엘군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시아파 무장단체가 바로 오늘날까지 중동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판받는 ‘헤즈볼라’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59)은 뚜렷한 성과가 없는데도 취임 9개월 만인 2009년 10월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평을 얻었다. 위원회는 그가 ‘핵 없는 세상’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핵 감축에 실질적인 성과가 없었는데도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란 점에 무게를 두고 평화상을 줬다는 일각의 비판이 제기됐다. 오바마의 집권 마지막 해인 2016년 미 과학자연맹(FAS)은 “지난 8년간 오바마 행정부가 냉전 이후 다른 어떤 미 행정부보다 핵 탄두량을 적게 감축했다. 2015년에는 1970년대 이후 가장 적은 수의 핵무기가 해체됐다”고 비판했다.

1912년 수상자인 엘리후 루트 전 미 국무장관(1845∼1937)은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한 당시 필리핀인 학살을 주도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유엔 창설에 기여한 공로로 1945년 평화상을 받은 코델 헐 전 미 국무장관(1871∼1955) 역시 1939년 나치로부터 도망친 유대인 난민 950명을 나치에 돌려보내 이들이 몰살당하는 데 관여한 점이 드러났다.

○ 악용된 과학 분야 수상자들의 업적

다른 부문 수상자 중에도 자격 미달 비판을 받은 이가 종종 있다. 특히 과학 수상자의 연구 내용이 핵 또는 화학무기 개발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독일 화학자 오토 한(1879∼1968)은 핵분열을 발견한 공로로 1944년 화학상을 수상했다. 한 본인은 핵 개발에 반대했고 군사 목적의 연구를 하진 않았지만 결국 그의 연구가 핵폭탄 제조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18년 화학상 수상자인 또 다른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1868∼1934)가 발명한 암모니아 합성법은 훗날 독가스 개발에 쓰였다.

미 과학자 라이너스 칼 폴링(1901∼1994)은 화학상(1954년)과 평화상(1962년)을 모두 수상했지만 인명살상 무기 개발에 참여한 전력, 옛 소련과의 결탁 의혹 등으로 비판받고 있다.

1976년 경제학상 수상자인 ‘시카고학파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1912∼2006), 지난해 문학상 수상자인 페터 한트케(78)는 각각 독재자와 전범을 옹호해 반발을 불렀다. 프리드먼은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와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프리드먼은 1970년대 중반 칠레 경제정책을 자문하면서 피노체트와 인연을 맺었다.

한트케 역시 보스니아 무슬림 인종청소로 악명 높은 전 세르비아 지도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1941∼2006)와 가까운 사이다. 그는 구금 중 숨진 밀로셰비치의 장례식 조사에서 밀로셰비치를 두둔해 전범 옹호 논란에 휩싸였다.

자궁경부암 발병 원인인 인간유두종바이러스(HPV)를 발견해 2008년 생리의학상을 받은 독일의 하랄트 추어하우젠 박사(84)는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의 로비로 수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가 개발한 백신을 판매해 온 아스트라제네카가 추어하우젠의 수상 전 노벨재단 산하 노벨미디어에 거액을 후원했고, 일부 선정위원이 아스트라제네카의 자문을 맡아 ‘돈으로 노벨상을 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 1962년 생리의학상을 받은 미 과학자 제임스 왓슨(92)은 2007년 인터뷰에서 “흑인의 지적 능력이 의심스럽다”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이후 강연 등이 끊겨 살림살이가 빠듯했던 왓슨은 생활고를 이유로 2013년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내놨고 한 해 뒤 약 53억 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노벨상 수상 증거를 팔아 돈을 번 것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 선정 기준 논란 개선 방안은?

노벨상 수상자 선정 방식 및 심사 과정 개선, 엄격한 사후 관리 등 노벨상을 운영하는 방식 자체가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스웨덴 한림원이 선정하는 다른 5개 부문과 달리 평화상은 노벨의 유언에 따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선정한다. 이 위원회는 노르웨이 의회가 임명하는 위원 5명으로 구성된다. 20세기 초중반만 해도 노르웨이 현역 의원이 대부분이었지만 위원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성향이 수상자 선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1977년부터 현역 의원의 위원직 겸직을 금했다. 이에 전직 정치인과 관료, 학자 등이 주로 뽑힌다.

현재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위원 5명 가운데 3명은 전직 정치인, 나머지 2명은 학자다. 베리트 레이스아네르센 위원장(66)은 전직 법무장관, 토르비에른 야글란 위원(70)은 전직 총리, 안네 엥에르 위원(71·여)은 문화장관 출신이다. 헨리크 쉬세 위원(54)은 철학자, 아슬레 토예 위원(46)은 국제정치학자다.

그러나 여전히 후보 명단, 추천한 이들 등에 관한 정보는 선정 이후 50년 동안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다. 심사 과정에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 외부에서는 알 수 없어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불과 5명이 세계 각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평화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후보 추천자의 자격 범위 또한 지나치게 좁은 범위에서 이뤄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평화상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은 각국 국가수반, 정부 각료, 국회의원, 국제사법재판소·상설중재재판소 관계자, 역사 사회과학 법 철학 신학 종교학 분야 교수, 전 노벨평화상 수상자,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전·현직 위원과 고문 등이다. 강대국 장년층 백인 남성의 시각을 반영한 추천이 대부분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마련된 셈이다. 여성, 젊은층, 개발도상국, 성소수자 등의 시각을 반영할 수 있도록 추천인 자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벨상 역사를 연구한 리처드 건더먼 미 인디애나대 교수는 NYT에 “노벨상 시상은 항상 여론에 휩쓸리거나 정치적 혹은 민족주의적인 동기와 편견에 지배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헨리크 우르달 노르웨이 오슬로평화연구소 소장은 “(완료된 업적이 아닌) 진행 중인 과정에 시상하는 행위는 특히 위험하다”고 가세했다. 아직 갈등이 끝나지 않은 분쟁지역 지도자 및 정치인에게 섣불리 평화상을 수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수상자를 둘러싼 갖가지 논란에도 아직 노벨재단은 이미 수여한 상을 취소하거나 회수한 적이 없다. ‘수상 전까지의 공로만 평가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뀐 만큼 이미 수여한 노벨상을 추후 박탈할 수 있는 기준 또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특히 평화상은 누가 봐도 그 취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면 수여된 상을 무효화하거나 회수하는 게 옳다”며 “일정한 기준을 마련하고 수상자가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재평가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설 snow@donga.com·조종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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