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외로움, 긍정적인 고독[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입력 2020-11-18 03:00수정 2020-11-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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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남복 기자 knb@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외로움을 말로 옮기기는 어렵습니다. 들어줄 상대가 없습니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현대인의 외로움은 역설이자 모순입니다. e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화상회의가 넘쳐나는데도 네 사람 중 한 사람은 만성 외로움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두 해 이상 지속되면 만성으로 여깁니다.

취미 활동을 하거나 모임에 참여해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외로움만으로 끝나지도 않습니다. 면역 기능이 떨어지면서 여기저기 아프고, 먹는 것으로 달래려다가 비만, 당뇨, 고혈압이 생깁니다. 우울증이 겹치면 술 중독, 자살 생각, 자살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유전학적 변화가 생긴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만성 외로움은 개인의 취약성, 자기 조절 능력, 외톨이 대처 방식이 모여 결정됩니다.

외로움은 침묵하는 절규입니다. “나 여기 있습니다!”라고 고함치는 겁니다. 소속감을 느끼는 순간 외로움은 사라질 겁니다. 그러나 혼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안에 그 사람이 있다면 외롭지 않습니다. 같이 있어도 얼마든지 외로울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그 사람이 없다면 외롭습니다.

외로움은 원시사회의 유물입니다. 쫓겨난다는 것은 사형선고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따돌림은 외로움으로, 외로움은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소속감을 얻으려고 무리해서 집단에 들어갔다가 이용만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는 수도 있습니다. 소외로 고통을 받으면 관계가 내는 소리와 냄새에 예민해집니다. 과민하게 반응하거나 회피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킵니다. 외로움이 불러오는 낙담이나 처량한 감정, 의기소침한 느낌은 벗어나기에 너무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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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옆에 누가 꾸준히 있어준 사람은 외로움에 면역력이 생깁니다. 외로움에 쉽게 빠지지 않고, 혼자 힘으로 벗어납니다. 옆에 사람이 없이 자랐다면 외로움에 잘 빠집니다. 마음도 제대로 크려면 영양분이 필요합니다. 허약한 마음은 불안, 우울, 외로움으로 표현됩니다. 튼튼한 마음은 안정감, 소속감, 떳떳함으로 나타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자신감을 느끼지 못하고 외톨이처럼 소외감, 외로움을 느낀다면 마음이 허약한 겁니다. 건강한 마음이라면 속하면서 속하지 않은 듯, 속하지 않으면서 속하는 것처럼 자유롭고 부담 없이 관계 속에 씩씩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외톨이 느낌은 마음에 지진을 일으킵니다.

외로움이 우울증과 겹치면 어떻게 될까요? 우울증을 약물로 치료해도 외로움은 남습니다. 외로움을 고치는 약물은 없으니, 마음으로 고쳐야 합니다. 사람에게 다시 상처받지 않으려고 술이나 인터넷을 선택했다면 정리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는 외로움이 더 깊어집니다. 이미 받은 상처를 보호하려고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습니다. 가족이나 진정한 친구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외로움에 지친 사람을 회피하거나 이득을 취하려 합니다. 급한 마음에 무조건 만나다가는 문제를 또 만듭니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옮겨가도록 노력하시길 권유합니다. 외로움은 다른 사람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이지만, 고독은 내가 나와 관계를 맺은 상태입니다. 고독은 다른 사람의 간섭에서 벗어나 내가 내 안의 우주, 무의식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상태입니다. 외로움은 고통받는 함정이지만, 고독은 창의성 발휘의 공간입니다. 외로움은 비어있음에 대한 고민이지만, 고독은 채움을 위한 희망입니다. 그러니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우선 외로움이 만성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내가 내 삶의 적이 되는 길을 차단해야 합니다. 시간의 함정에 빠지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이미 만성이라면, 손을 내밀어줄 사람을 찾아 말을 거십시오. 잠깐! 믿을 수 있는 사람인가요? 없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안전합니다.

외로움의 궁극적 탈출구는 의미를 찾는 겁니다. 내가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외로움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의미를 찾으면 견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을 단숨에 고칠 수는 없지만, 삶을 바라보는 안목을 바꾸는 마음의 작업은 가능합니다. 외로움을 일단 고독의 공간으로 옮길 수 있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한 발자국 디딘 겁니다. 외로움은 부정적 혼돈이고 고독은 긍정적 몰입입니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바꿀 수 있다면, 외로움에서 벗어날 방법을 효율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을 겁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외로움#고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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