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지탱하는 기둥[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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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이번 미국 대선은 어느 때보다 내게 절실하게 다가왔다. 내가 실시간 선거 결과에서 눈을 떼지 못하자 함께 저녁을 먹던 친구가 “네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일도 아닌데 왜 그리 집착하느냐”고 핀잔을 줄 정도였다.

올 10월 미국 과학학술지 ‘사이언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연방정부 과학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불만을 보도했다.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일과 관련해 전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미 상무부 산하 대기해양청의 수석 과학자를 지냈고 현재 오리건주립대에 재직 중인 릭 스핀래드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가 과학적 사실을 얼마나 공공연히 무시하고 공격하는지 지적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연방정부 연구소뿐 아니라 학계 전체에 만연해 있었다. 나 또한 비슷한 현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이번 대선이 이전과 사뭇 다르게 다가왔던 이유다.

과학적 권고를 무시한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일방통행은 특히 환경 분야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가 하버드대와 컬럼비아대 법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환경 관련 규제 99가지를 약화시켰거나 약화시키는 중이라고 한다. 이 중 대기 오염에 관련된 규제를 폐지하거나 약화시킨 사례가 26가지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환경보호에 부정적인 정책 뒤에는 과학계에서 주류 의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연방환경청 과학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한 교수는 과거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가 숨쉬는 공기는 너무 깨끗해서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마치 우리가 예방주사를 맞듯 적당한 양의 대기오염 물질로 우리의 몸을 단련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주류 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학설이었다. 그를 비롯한 기후변화 부정론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보직을 맡았다. 대체로 지구과학계에서 소수로 분류되는 학자들이다. 결과적으로 주류 학계에서 기본적인 팩트로 받아들여지는 대기오염, 기후변화 문제들과 관련해 마치 과학적 논란이 아직 있는 것처럼 여지를 남겨 일반인에게 편향적 인식을 심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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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연구 활동은 동료 연구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검증을 받는다. 이런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소수 의견들은 주류 과학계에 설 자리가 없기 마련이다. 이러한 검증 절차의 공고함과 건전성은 과학자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이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은 개개인의 연구에는 자율을 추구하면서도 연구집단 내에서의 엄격한 검증 과정을 중시하고 존중한다. 더 나아가 과학의 탈을 썼지만 이러한 과정을 건너뛴 생뚱맞은 주장은 과학자 사회의 건전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로 경계 대상이 된다.

정치적 문제와 관련해 의견 표명을 자제해 온 과학계 정기 간행물들이 지난 몇 개월 동안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거나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미국의 대표적 의학 학술지인 랜싯과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은 미 정부의 비과학적인 코로나19 대응방식을 질타했다. 영국의 대표적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와 미국의 대중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특히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175년에 이르는 잡지 역사상 처음으로 사설을 통해 사실과 증거를 거부하는 트럼프 대통령 대신 다른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철학자 마이클 스트레븐스는 올해 발간된 그의 저서 ‘지식 기계(The Knowledge Machine)’에서 17세기부터 시작된 현대 과학의 출발점을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신념을 최대한 억누르고 사실에만 기반해 자연현상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에서 찾았다. 특히 고전 물리학을 정립한 뉴턴도 종교적 신념이 강하고 비과학적으로 알려진 연금술을 믿었으나 이러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시각을 본인의 과학 활동에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어지러운 사회적 담론 속에서 개개인의 주관을 억누르고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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