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키우는 ‘확실성의 함정’[김세웅의 공기 반, 먼지 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요즘 우리 삶의 불확실성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이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시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잘 모르겠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지 않고 있다. 더 위험하게도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에게 아이의 미래에 대한 확실성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잘나가는 속칭 ‘1타 강사’의 자신감 있는 표정에 매료되기 일쑤다. 심지어 신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져야 하는 종교인들 중 일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든 건 칼로 두부를 자르듯 확실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식이다. 이러한 확실성의 함정에 빠지면 불행하게도 자신의 생각만이 맞다는 개인과 집단들의 첨예한 대립이 계속되는 사회를 피하기 어렵다.

196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기상학과 에드워드 로렌츠 교수는 초기 컴퓨터 모델을 이용하여 날씨를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하던 중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했다. 일기 변화 모델 시뮬레이션 중 나온 값을 초기 조건으로 이용하여 다음 날 날씨를 예측하면 중단 없이 지속적으로 모델을 구동시켰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산출되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로렌츠 교수는 중간에서 도출한 값이 소수점 셋째 자리에서 반올림된 값으로 출력됐고 그 값이 모델에 입력됨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생겼음을 확인했다. 즉, 아주 작은 차이가 12개의 변수만을 이용하여 계산됐던 매우 단순한 날씨 모델의 결과를 완전히 바꿔 버리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로렌츠 교수는 이를 1963년 미국의 대기 과학 전문지에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놓았다. “초기 조건의 아주 작은 차이가 종국적으로는 매우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가 현재를 진단하는 관측 값에는 언제나 오차가 존재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이를 기반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는 이러한 생각의 틀을 발전시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혼돈 이론, 즉 작은 변화가 전혀 예측치 못한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 이론의 창시자가 된다. 같은 과의 케리 이매뉴얼 교수는 로렌츠 교수의 학문적 기여에 대해 “로렌츠 교수는 (인간의 지성을 이용하여 모든 문제의 정확한 정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데카르트적 세계관을 넘어 예측 가능해 보이는 모든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우리의 한계가 있음을 극명히 보여준 과학적인 업적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대기오염을 예측하는 수치 모델은 로렌츠 교수가 정확도의 한계를 예측한 기상 모델보다 복잡한 모델 시스템이다. 더욱이 미세먼지나 오존을 만드는 대기 중 화학적 변환 과정 또한 비선형적 과정이어서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는 것은 이미 1970년대 알려진 바 있다. 여기서 비선형적 과정이란 특정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이 줄어든 만큼 실제 미세먼지나 오존의 농도가 비례해서 줄지 않거나 또는 오히려 농도가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이 한국과 중국의 이산화질소의 올해 농도가 지난 3년 대비 각각 25.4%와 41.7% 줄어든 사실을 예로 들며 “한국이 중국 대기 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음을 방증한다”며 중국 쪽에 강력한 대처를 요구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단순히 목청만 높이는 대신에 실질적인 관측치를 분석했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산화질소는 대기 중에서 배출되면 몇 시간 안에 질산염으로 변환되는 매우 반응성이 높은 물질이다. 이러한 이유로 위성에서 관측된 질소산화물의 한반도 분포를 보면 서울 부산 등 대도시와 여러 공업지역의 경계가 명확하게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이산화질소가 발생 지역을 벗어나기 전에 이미 화학적으로 전환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중국의 이산화질소 감축치는 우리나라의 이산화질소 농도와 상관이 없다는 의미다.

이런 예는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건설적 비판과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는 자세가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낸다. 만약 한국과 중국의 이산화질소 자료를 보고 전문적인 의견을 들었더라면 잘못된 해석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회 토의 과정에서 환경 전문가들이 과학적인 부분을 설명했다면 잘못된 정보가 국민들에게 전달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대기오염뿐만 아니라 복잡한 사회 현상에 접근할 때 우리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학적 자세가 요구된다.

김세웅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skim.aq.2019@gmail.com
#갈등#확실성#함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