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소상공인들에 도움” vs “1조 예산 투입할만큼 효과 없어”[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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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조 규모로 커지는 지역화폐 논쟁

세종=주애진 경제부 기자
세종=주애진 경제부 기자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화폐를 발행하면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는 사라지고 예산 낭비 등 부작용만 남는다.”(한국조세재정연구원)

“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 소득 증가에 더한 매출 및 생산 유발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고 온 국민이 효용을 체감한다.”(이재명 경기도지사)

지난달 15일 조세재정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 한 편이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다. 정식 연구보고서를 요약한 8장짜리 사전 보고서로,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내용이 담겼다. 발표 직후 이 지사가 해당 보고서를 “얼빠졌다” “엉터리”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면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지역화폐는 특정지역 내 전통시장이나 가맹점에서만 쓸 수 있는 일종의 상품권이다. ‘서울사랑상품권’ ‘창원사랑상품권’처럼 발행하는 지역의 이름을 앞에 붙인 형태가 많다. 액면가의 10% 안팎으로 싸게 구입할 수 있어 소비자들은 그만큼 할인받는 효과가 있다.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전국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는 2017년 56곳에서 올해 229곳으로 4배 이상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3065억 원에서 9조 원으로 29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지역화폐에 대한 지자체와 정치권의 의견은 대부분 찬성으로 기운다. 지역 민심 달래기, 전통시장 활성화 카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계에선 대체적으로 지역화폐 남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역화폐 발행에 중앙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제대로 된 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정부 예산 투입되자 폭발적 증가

지역화폐 발행이 급증한 데에는 중앙정부 지원이 큰 영향을 미쳤다. 2018년 12월 정부는 ‘자영업 성장·혁신 종합대책’의 하나로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발행하던 지역화폐에 재정을 지원하기로 했다. 2018년 고용위기 지역에 한해 한시적으로 100억 원을 지원한 적은 있지만 지역화폐 발행 금액의 일부를 보조하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중앙정부 예산이 투입된 건 2019년이 처음이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1월 보도자료에서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국가 지원 계획이 알려지자 상품권 운영을 희망하는 지자체가 기존 70곳에서 116곳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는 지역화폐 발행액 2조3000억 원에 대한 할인율 4%를 보조해 총 844억 원을 지원했다. 당시 서울 등 재정 여건이 좋은 일부 지자체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그러다가 올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앙정부의 지원이 급격하게 확대됐다. 정부는 코로나19로 얼어붙은 소비를 활성화하고 자영업자를 돕겠다는 취지로 당초 3조 원으로 계획했던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를 9조 원으로 늘렸다. 국고 보조율도 4%에서 8%로 올렸다. 액면가의 10%를 할인해주는 지자체의 경우 할인 금액의 80%는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20%만 지자체가 내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지역화폐에 투입되는 중앙정부 예산도 기존 721억 원에서 6288억 원으로 불어났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운 지자체와 매출 증가를 기대하는 소상공인,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소비자들의 수요가 맞물리면서 정부 지원을 확대해 달라는 요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여기에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해 ‘현금 살포’에 호의적인 정치권도 거들고 나섰다.

결국 정부는 내년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규모를 15조 원으로 확대하기로 하고 예산 1조522억 원을 배정했다. 국고 보조율도 6∼8%로 높였다. 2년 만에 지역화폐 발행 규모는 4.7배로,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12.5배로 불어나는 것이다. 내년에는 서울, 경기 성남시 등 재정 여건이 좋은 지자체에도 정부가 발행액의 3∼4%를 보조하기로 했다.

○ 연이은 ‘완판’ 무색하게 사용률은 저조

쏠쏠한 할인 혜택이 입소문을 타면서 최근 일부 지자체의 지역사랑상품권은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 25개 자치구는 올 들어 3, 4차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했는데 대부분 짧은 기간 내 판매 물량이 소진됐다. 서울 영등포구가 올 들어 세 번째 판매한 50억 원 규모의 ‘영등포사랑상품권’은 판매 시작 5일 만인 지난달 21일 매진됐다. 6월 경북 포항시가 발행한 ‘포항사랑상품권’ 500억 원어치는 일주일 만에 동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지역사랑상품권을 활용한 재테크 비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역사랑상품권을 쓸 수 있는 가게나 학원 목록, 상품권을 판매하는 시기와 장소를 공유하는 정보도 많다. 성남시에 사는 한 누리꾼은 “엄마와 남동생 도움으로 성남사랑상품권(1인당 50만 원 한도) 150만 원어치를 135만 원에 샀다”며 “이걸로 학원비 두 달 치를 선결제하고 외식할 때도 10% 싸게 쓰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완판 인기만큼 실제 지역화폐 사용이 뒤따라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회가 내놓은 ‘서울시 4차 추경안 예산심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가 올해 초부터 8월까지 발행한 서울사랑상품권 4185억 원 가운데 실제 결제된 금액은 2367억 원(56.6%)에 그쳤다. 발행액의 90% 이상이 팔렸지만 절반 정도가 곧바로 소비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급증한 발행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공공기관이 동원되기도 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추석을 앞두고 한국도로공사, 사회보장정보원 등 53개 공공기관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동참하는 취지로 직원 성과급 일부를 지역사랑상품권이나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행하는 온누리상품권으로 지급했다. 사회보장정보원은 경영평가 성과급의 24%에 해당하는 2억 원어치의 지역사랑상품권을 구매했다.

○ “지역경제 활성화” vs “경제적 효과 떨어져”

그동안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보고서가 여럿 나왔지만 결론은 엇갈렸다. 지난달 경기연구원은 경기 지역 소상공인 업장 약 3800곳의 지난해 매출을 분석해 지역화폐 결제액이 100만 원 늘어나면 소상공인 매출이 145만 원 증가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의 지난해 보고서도 지역화폐가 전국적으로 2조7000억 원어치(당시 추산치) 발행되면 생산 유발액 3조2128억 원, 부가가치 유발액 1조3837억 원, 취업 유발 인원 2만9360명에 이르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지역화폐는 사용처 제약 등으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방해하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 효과도 슈퍼마켓 등 일부 업종에만 나타난다고 봤다. 조세연은 올해 지역화폐 발행에 투입된 정부 보조금과 발행 비용 등으로 인해 2260억 원의 경제적 순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한국재정학회도 3월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기존 연구들이 서베이 자료에 기초해 소상공인의 매출 증대와 부가가치 창출 효과가 있다고 추정했지만 일반화하기는 한계가 있다”며 “지역화폐의 신규 도입이나 확대 발행으로 인한 지역 내 고용 효과는 크지 않다”는 결과를 내놨다.

일부 연구의 방법론 문제를 제외하고도 기존 지역화폐 연구는 대부분 한계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지역화폐 발행 규모가 본격적으로 확대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역화폐 관련 연구보고서마다 “장기적인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문구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유다.

○ 비용 대비 효율적 수단인지 따져봐야

지역화폐의 정책 목표가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고 소상공인 매출을 늘리는 데 있다면 일정 부분 효과는 있다는 게 학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당장 새로운 소비를 창출해 경제 성장을 촉진하진 못해도 돈의 흐름을 정부가 원하는 방향(소상공인)으로 돌리는 효과는 분명 있다”며 “지역화폐를 적정 수준으로 발행한다면 정부의 취지를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투입된 비용만큼 지역화폐가 효과적인 정책 수단인지는 점검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정책학과 교수는 “지난해 중앙정부가 발행 보조금을 주기 시작하면서 지역화폐가 급격하게 늘었는데 그 예산을 지자체나 소비자에 직접 주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우월한 방식인지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장기적으로 데이터가 축적되면 소상공인 매출에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를 냈는지 정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지역상권의 매출 증가 효과 못지않게 소비자 선택권 제약에 따른 비용도 크다”며 “지역 제한이 없는 온누리상품권으로 통일하는 등 소비자 편익을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내년에 1조 원이 넘는 큰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지역화폐 효과를 냉철하게 분석하는 중간평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고 어려운 소상공인을 돕자는 취지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수단으로서 지역화폐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더 나은 방법은 없는지 논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다양한 연구와 분석이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역화폐가 자칫 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용으로 변질되고 있는 건 아닌지도 점검해야 한다. 정치적 관점이 아닌 정책적 관점으로 지역화폐가 정말 도움이 되는 정책인지 살펴볼 때다.

세종=주애진 경제부 기자 jaj@donga.com
#지역화폐#소상공인#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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