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민’[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157〉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입력 2020-09-09 03:00수정 2020-09-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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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들에게서 사랑의 감정만이 아니라 편견까지도 물려받는다. 그러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어른들처럼.

김혜진 작가의 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에는 엄마와 단둘이 사는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나온다. 어렵게 살아도 구김살이 없는 아이다. 그런데 아이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울먹인다. 아이들이 ‘남민’이라고 놀렸다는 거다. 남민이라는 말은 “남일도에 사는 난민”이라는 의미다. 유치한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지만 그 말이 아이에게는 큰 상처가 된다.

아이가 사는 행정구역 이름은 남일도가 아니라 남일동이다. 변변한 집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거나 그러한 사람들이 대를 이어 살아가는 속칭 달동네다. 그런데 길 하나만 건너면 중앙동이다. 달동네를 벗어났거나 달동네에 살 필요가 없는 중산층이 사는 지역이다. 중앙동 사람들은 남일동을 남일도라 부른다. 자기들은 뭍에 살고 저들은 섬에 산다는 논리다. 비록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고 있지만 그렇게라도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상상 속의 난민들이 그러하듯 그들의 남루함과 가난이 이쪽을 오염시킬 것만 같다. 한때 남일동에 살았던 사람들마저 그렇게 생각한다. 순수해야 할 초등학교 아이들마저도 그렇다. 아이들은 남일동에 사는 동급생 아이를 남민이라고 놀리며 즐거워한다. 이러한 언어적 폭력은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어른들의 편견과 가학성을 물려받은 것이다.

소설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에 관한 이야기지만,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난민 취급을 당하는 아이에 관한 일화는 문제의 핵심을 파고든다. 그 아이를 섬에 갇힌 난민으로 만드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보는 어른들이다. 소설은 남일동과 중앙동의 거리, 가까우면서도 아득한 그 거리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감과 상처를 고통스럽게 응시한다. 아이들마저도 가학적으로 만드는 심리적 거리에 대한 알레고리적 성찰이라고나 할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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