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파괴보다는 타협안 만들라는 것이 역사의 교훈”

  • 동아일보

정년퇴임 앞둔 주경철 서울대 교수
최신 학설 반영 프랑스 通史 출간
“佛지방세력에 혁명 끔찍하고 가혹
현실서도 부작용 적은 길 찾아야”

최근 ‘주경철 프랑스사’를 출간한 주경철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이달 정년 퇴임하는 그는 “작은 주제라도 논문을 얼마나 많이 썼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는 대학 제도가 학자들로 하여금 큰 흐름의 책을 쓰는 대신 자잘한 연구를 하도록 만든다”고 꼬집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최근 ‘주경철 프랑스사’를 출간한 주경철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 이달 정년 퇴임하는 그는 “작은 주제라도 논문을 얼마나 많이 썼느냐를 가지고 평가하는 대학 제도가 학자들로 하여금 큰 흐름의 책을 쓰는 대신 자잘한 연구를 하도록 만든다”고 꼬집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일거에 모든 걸 폭력으로 파괴하고 이념을 이루겠다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타협안을 조금씩 만들어 나가는 게 더 나은 길 아닐까요.”

이달 정년 퇴임하는 주경철 서울대 역사학부 교수(66)에게 ‘성숙한 발전의 길’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앙시앵레짐(구체제)을 깨뜨린 ‘혁명의 나라’ 프랑스 역사를 포함해 서양 근대사를 평생 연구한 학자의 답이라기엔 너무 온건한 게 아닐까. 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주 교수는 “프랑스 혁명 당시 지방 세력이나 반혁명 분자로 몰렸던 이들에게 혁명은 굉장히 끔찍하고 가혹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서 오늘날까지도 거론하길 꺼리는 ‘방데 반란’도 그중 하나다. 왕당파 농민군을 진압하던 혁명군은 중서부 방데 지역을 초토화하면서 연령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주민을 학살했다. 2년 동안 13만 명이 희생된 이 사건은 제노사이드(genocide·특정 집단에 대한 대학살)로 규정되기도 한다.

“오늘날엔 파리 혁명가 집단이 내세운 민주주의와 민족주의가 현대성과 미래로 나아가는 발전의 길이라고 보지만, 당시 프랑스의 각 지방이 쌓아온 지방 제도, 문화, 현실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현실에서도 이 같은 ‘역사의 복합성’을 이해하면서, 덜 고통스럽고 부작용이 적은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는 것. 주 교수는 “프랑스 혁명이 배고픈 이들이 참다 참다 봉기한 사건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사실은 번영이 지속되다가 흐름이 꺾이는 시기에 강한 반발이 일어나는 ‘발전의 끝’이 기본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주 교수는 최근 통사(通史)인 ‘주경철 프랑스사’(휴머니스트)를 출간했다. 역사학계에서 통사는 해당 분야의 ‘대가’만이 쓸 수 있다고들 말한다. 기존 프랑스사 입문서로는 앙드레 모루아(1885∼1967)의 ‘프랑스사’가 널리 읽혀 왔지만 다소 낡은 게 사실. 주 교수는 “프랑크족은 현지에 살던 이들이 로마를 추종하면서 정체성을 형성했다는 것이 요즘 연구인데, 먼 데로부터 이주해 왔다는 1980년대식 학설이 아직까지 우리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고 했다.

주 교수는 서구의 해양 팽창 등에 천착하며 해양사를 학과 전공과목으로 개설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공저한 ‘글로벌 패권의 미래’(아카넷) 서문에선 “한국은 미국 주도의 질서에서 성장했지만, 미국 상황은 이전 같지 않은 데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는 한국 내 사회 불안을 촉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세 말 근대 초의 베네치아나 17, 18세기 네덜란드는 경제 번영과 뛰어난 문화를 바탕으로 영향력을 발휘했어요. 그를 참고해 부드러운 헤게모니를 발휘하면서 우리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이끄는 역량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묻자 “인문학자가 정신 차려야 한다”고 답했다. ‘왜 인문학을 찾지 않느냐’고 물을 게 아니라, 인문학이 사회과학과 과학기술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얘기다.

학술서와 교양서 등 20여 권을 낸 그는 “구미와 일본 등에선 전문 연구를 대중이 소화하기 쉽게 전달하는 분야가 굉장히 활성화돼 있다”며 “연구뿐만 아니라 격조 있는 대중화(오트 뷜가리자시옹·haute vulgarisation)’도 목표였다”고 했다. 퇴임 뒤엔 중학생 정도의 독자를 염두에 둔 교양 세계사를 구상하고 있다.

“세계 의식을 갖고, 세계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알고 나아가야 하는데, 초중고교에 세계사 교육이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실정입니다. 짧게 압축하다 보니 암기 위주가 되고, 역사가 지겨운 게 돼 버렸어요. 큰일입니다. 학생들도 역사의 재미에 눈뜨길 바라요.”

#프랑스 혁명#주경철#역사학#방데 반란#제노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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