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액 5조7747억…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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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날개 단 지역화폐… 지자체 94%가 발행

올해 5월 20일 오전 6시 40분. 서울 송파구에 사는 직장인 장모 씨(40)는 눈을 뜨자마자 동네에서 쓸 수 있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사기 위해 모바일 결제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했다. 하지만 화면에는 ‘서비스 접속 대기 중입니다. 대기열은 4167명입니다’라는 안내 메시지가 떴다. 앱이 자동으로 꺼져 다시 켜기를 반복하다 보니 판매가 종료돼 버렸다.

장 씨는 이달에는 서둘러 월 100만 원 한도를 채워 상품권을 구매했다. 100만 원어치 상품권을 실제로는 93만 원만 주고 구입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장 씨는 “어차피 아이들 학원비로 나가는 돈이고 지출에 대해선 소득공제도 추가로 해주니 이득”이라고 했다.

○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지역화폐
지역사랑상품권 열풍이 뜨겁다. 24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상반기(1∼6월) 지역사랑상품권 판매액은 5조7747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 전체 판매액(3조2000억 원)을 넘어섰다. 2년 전과 비교하면 15배가 넘는 증가 폭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고 있거나 올해 안에 발행할 예정인 전국 광역·기초지자체는 모두 229곳이다. 1년 만에 52곳이 늘어나 전국 지자체 243곳의 94%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게 됐다.

지역사랑상품권은 해당 지역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으로 지역화폐의 공식 명칭이다. 앞 두 글자 ‘지역’에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의 이름을 붙여 ‘강진사랑상품권’ ‘포항사랑상품권’ 등으로 발행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지역소득의 역외유출을 막고 지역경제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지자체들이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지역화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코로나19로 급격히 얼어붙은 소비에 온기를 더해 소상공인을 지원하겠다며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총 9조 원까지 확대했다. 지자체들도 할인율을 5%에서 10∼20%까지 올렸다. 정치적 셈법도 한몫했다. 총선까지 겹치면서 지역 표심을 겨냥해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라는 사실상의 현금을 나눠준 것이다.

할인 혜택 확대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주부 이모 씨(36)는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지역화폐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생활비를 아낄 수 있어 애용자가 됐다”고 말했다.

○ “소상공인 소득 증가”vs“일부 업종에 혜택 집중”
지역화폐는 실제로 지역 내 상인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500m가 채 안 되는 같은 상권 안에서도 말은 엇갈린다. 22일 오후 경기 고양시의 한 아파트단지 인근에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 씨(58)는 “고객들이 긴급재난지원금에다가 지역화폐까지 많이 사용하면서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근처에서 여성 의류를 판매하는 최모 씨(45)는 “매출 증가 효과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학계에서도 분석이 엇갈린다.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2018년 내놓은 연구에선 지역화폐 발행에 따라 소상공인 1인당 연 2.13% 추가 소득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지역화폐가 지역 소비 활성화와 고용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여럿 나왔다.

하지만 효과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한국재정학회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에 3월 제출한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228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지역화폐의 신규 도입이나 발행 확대는 해당 지역의 고용 규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연구를 수행한 강창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다수의 연구들이 지역화폐가 지역 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지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올 10월 공식적으로 연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도 동네 슈퍼마켓 등 일부 업종에 혜택이 집중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경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2010년부터 2017년까지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지역화폐 발행이 소상공인들의 매출을 증가시킨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고, 슈퍼마켓과 식료품점에 한해서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 단위의 최적 의사결정과 전 국가 차원의 최적 의사결정은 다르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지역화폐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역화폐 할인율을 이용해 지역화폐를 대량 구입한 후 현금으로 바꾸는 이른바 ‘깡’ 사례도 적지 않다. 강화군은 깡으로 불리는 부작용 사례가 다수 발생하고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미미해 2018년 시행 3년 6개월 만에 ‘강화사랑상품권’ 발행을 폐지하기도 했다. 행안부는 이에 6월 30일 시행령을 마련했다. 앞으로는 지역사랑상품권의 유통 질서를 교란시키는 각종 불법 환전, 소위 ‘깡’에 대해 최대 2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 세금으로 주는 할인 혜택에 재정 부담 부메랑
세금이 투입돼 장기적으로 재정 부담이 커진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지역화폐는 발행액이 늘어날수록 지자체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여서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이 장기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부산시와 인천시 등 일부 지자체에선 예산이 소진돼 지역화폐 할인율을 낮추거나 발행을 일시 중단하기도 했다.

결국 중앙정부의 세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추가경정예산 등을 통해 올해 발행 규모가 9조 원으로 늘어나면서 지역화폐에 투입되는 중앙정부 예산은 모두 6298억 원에 이른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금을 활용해 소상공인들을 지원한다고 할 때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지역화폐’ 발행이 그리 효율적인 방법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형평성 문제도 남는다. 김 교수는 “지역별로 화폐 할인율이 다르고, 지역화폐를 구매하는 사람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실제로 서울시는 올 3월 상품권 할인율을 15%까지 높이고, 사용금액의 5%를 캐시백으로 돌려줬다. 최대 20%까지 할인을 받아 100만 원어치를 80만 원에 구입할 수 있었다. 반면 대부분의 지자체는 할인율이 10%였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화폐의 취지부터 문제 삼았다. 김 교수는 “작은 가게, 음식점들이 과포화 상태인데 지역화폐, 결국 정부재원으로 이들에 돈이 흘러가게끔 만드는 것”이라며 “사실상 화폐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사용량이 늘어나면 유동성 ‘관리’의 문제도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희창 ramblas@donga.com·장윤정 기자
#지역화폐#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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