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공중파 방송 SBS에서 ‘아키라 키드’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습니다. 이 다큐멘터리는 30~50대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유는 1980년대부터 2000년까지 유행하던 오락실 문화를 조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어린 시절에,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게임을 한 판하던 오락실 문화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세계를 재패한 ‘아키라 키드’의 일화는 그 자체로도 흥미로운 소재였지만, 그건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었습니다. 중년 시청자들은 ‘응답하라 1988’을 보듯 추억의 시절로 빠져들며 공감했고, 눈시울을 붉히며 다큐멘터리에 대한 긍정적인 소감을 쏟아냈습니다.
SBS 다큐멘터리 ‘아키라 키드’ 등장 인물들 / 사진 출처: IT동아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오락실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PC방의 등장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오락실을 운영하려면 업주가 ‘게임 기판’을 구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동전을 받아서 수익을 창출했지요. 새로운 게임이 등장할 때마다 업주는 목돈을 써야했고, 게임이 인기가 없다면 큰 손해를 봐야 했습니다. 이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죠. 심지어 같은 게임도 버전업이 계속 될수록 업주는 계속 기판을 사야했거든요.그러다 보니 업주들은 기존 오락실에서 PC방으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덕분에 곳곳에 있었던 오락실은 하나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락실이 사라지는 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바로 PC방이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PC방은 업주 입장에도 매우 효율적인 장사 수단이 되었습니다. PC만 세팅해 놓으면 이용자들에게 수많은 게임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노래방처럼 시간당 얼마라는 시간제 과금으로 운영되는 점도 좋았습니다. 오락실에서는 동전을 넣지 않고 구경만 해도 시간을 떼울 수 있었지만, PC방에서는 무조건 과금이 되었거든요. 게다가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게임 업데이트도 무료였습니다.
PC방 국민 게임으로 호평받았던 ‘리니지’ / 사진 출처: 엔씨소프트 제공마침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한국에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 광풍이 불어왔고, PC방은 전국의 수많은 오락실을 침몰시키며 젊은 층의 대세 놀이 문화시설로 자리잡았습니다. 뒤이어 2000년이 되면서 PC 온라인 게임 전성기가 찾아왔습니다. 블리자드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비롯해서 ‘라그나로크’, ‘서든어택’, ‘메이플스토리’ 등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이 출시되기 시작하면서 PC방은 무소불위의 인기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PC방 업주들의 고민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사들이 PC방 수익을 탐하며 반격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레드포스 PC아레나 피씨방 / 사진 출처: 비엔엠컴퍼니 제공손님들이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일정 부분 원작자에게 라이선스비가 책정되도록 시스템이 잡힌 것처럼, PC방도 시간당 게임사 과금이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PC방 이용자가 무슨 게임을 즐기는지에 따라 해당 게임사에도 과금이 돌아가도록 시스템이 구축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연히 PC방 업주들의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죠.
또한 PC 온라인 게임사들이 앞다투어 그래픽 경쟁, 대작 경쟁 체제로 돌입하면서 PC방에서도 최신 PC로 업그레이드해야하는 상황이 자주 오게 되었습니다.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오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과도한 PC방 경쟁으로 인해 이용료는 내려야 했으며 게임사들에게 주는 수익으로 점점 운영이 힘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코로나가 PC방에 핵폭탄처럼 큰 피해를 끼치게 됩니다. 모여서 PC방을 이용해야할 고등학생 및 대학생 층들이 코로나로 3년 넘게 단절되면서 필수 코스로 여겨지던 PC방과 단절되기 시작한 겁니다.
때문에 PC방 사업도 생존을 모색하게 되어, 이제 PC방은 게임을 즐기는 곳이 아니라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PC를 이용하는 여가 문화 시설이 되었고, 또 여러 명이 함께 즐기는 게임이 많이 늘어난 만큼 대형화 프랜차이즈 위주로 살아남은 형태로 변모했습니다.
VR기기 오큘러스 리프트 / 사진 출처: IT동아그러면 다음 시대의 게임산업은 어떤 형태로 진화하게 될까요? 재미난 것은 새로운 기술이 계속 생겨나고, 그러한 기술을 갖춘 플랫폼 속에서 게임도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변화를 대표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례가 바로 VR(Virtual Reality) 게임입니다.
무거운 HMD(Head Mounted Display)를 끼고 온갖 선을 연결해야 했던 초창기 VR 게임은 분명히 실패했다고 보는 게 맞지만, 게임이 플랫폼 환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명확한 근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기존의 평면 디스플레이에서 게임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시선에서 가상으로 보여주는 환경은 불완전했지만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게임 체험을 하게 해주었거든요. 그래서 PC방 만큼은 아니지만 전국에 VR방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다음 세대의 게임산업을 조명하려면, 다음 세대의 게임 플랫폼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 안경 등이 거론됩니다.
엔비디아 지포스 나우 차량 화면 / 사진 출처: 엔비디아 제공현재 테슬라는 자체적으로 많은 게임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0년에 테슬라는 국내에서 전기차용 게임 18개에 대해 정식등급 분류를 받았습니다. 이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시스템(IVI) 콘텐츠 시장의 개화를 상징하는 사건이 되었는데요, 바로 차량용 게임물이 정식으로 유통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내 브랜드인 현대에서도 게임 쪽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이러한 테슬라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엔비디아도 지난 2023년부터 자사의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자동차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엔비디아는 CES 개막에 앞선 지난 2023년 1월 3일, 엔비디아 드라이브 에코시스템 구성원인 현대차그룹, 비야디, 폴스타 등에 ‘지포스 나우(GeForce NOW)’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 밝힌 바 있죠.
나아가 인공지능을 통해 게임 환경에도 큰 변화가 찾아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삼성과 구글이 일제히 ‘AI 안경’을 연내 출시한다고 발표했거든요. 기존의 발표자인 메타·애플과 제대로 경쟁해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시장조사기관 스마트 애널리틱스 글로벌(SAG)은 글로벌 AI 안경 시장이 올해 56억 달러(한화 약 8조 1,704억 원) 이상으로 확대되며, 전체 2천만 대가 판매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이 AI 안경에 새로운 게임이 도입되고 유통된다면 이는 게임 생태계를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글이 발표한 ‘프로젝트 지니’ / 사진 출처: 구글 발표 영상 캡처이외에도 ‘주문형 인공지능 게임’도 점점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즉석으로 인공지능에게 어떤 게임을 만들어달라고 텍스트로 주문하고, 게임이 바로 만들어지면 이를 사람이 즐기는 형태입니다. 도깨비 방망이 같은 엉뚱한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지난 1월 30일에 구글이 이런 내용을 담은 AI 모델 ‘프로젝트 지니(Project Genie)’를 선보이면서 이는 더 이상 환상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 지니’는 간단한 텍스트나 이미지 입력만으로 상호작용 가능한 디지털 세계를 생성하는 AI 모델로, 이 발표와 함께 전세계 게임사들의 주가가 폭락할 정도로 큰 파급력이 있었습니다.
미래 세대의 새로운 플랫폼 속에서 탄생할 게임들이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을 주게 될까요. 벌써부터 두근거리기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