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尹, 국정원 수사때도 직무배제”… 秋 지휘 부당성 우회표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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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추미애 지휘권 수용]추미애-윤석열 갈등 일단 봉합

“수사지휘권 박탈은 형성적 처분으로서 쟁송 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 발생. 결과적으로 서울중앙지검이 자체 수사하게 됨.”

윤석열 검찰총장이 9일 오전 8시 41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과 관련해 전날 오후 6시 12분경 낸 입장에 이어 추가로 마지막 입장을 공개했다. ‘형성적(形成的) 처분’, ‘쟁송(爭訟) 절차’ 등 어려운 법률 용어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채널A 이모 전 기자의 신라젠 취재와 관련한 사건을 기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그대로 수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추 장관은 윤 총장에게 수사지휘권 수용 여부에 대한 답을 달라고 한 ‘데드라인’인 9일 오전 10시 “만시지탄이나 이제라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수사팀이 독립적으로 수사할 수 있도록 결정한 것은, 공정한 수사를 바라는 국민의 바람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만약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지시를 거부했다면 감찰 등에 착수하려고 했지만 추 장관의 후속 조치는 없었다.

○ 윤 “수사팀 기존대로 유지” 추 장관 지휘 수용
윤 총장이 공개한 입장문에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곤혹스러운 상황이라는 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형성적 처분으로서 쟁송 절차에 의해 취소되지 않는 한 지휘권 상실이라는 상태가 발생한다’는 대검의 입장문은 일반인으로서 무슨 말이지 이해하기조차 힘들다. 형성적 처분이란 처분하는 것만으로 다른 추가 절차 없이 효력이 바로 발생하는 법률행위를 뜻한다. 즉, 추 장관이 검찰청법 제8조에 근거해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검찰총장 수사지휘권을 행사한 순간 그 문언의 내용대로 바로 효력이 발생한다는 의미이다. 추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사실상 윤 총장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대한 지휘권이 박탈됐다는 뜻이다. 7일 동안 윤 총장이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점도 이미 2일 이후 지휘권의 효력이 발생한 상태라는 설명이다. 대검은 “(채널A 이 전 기자의 신라젠 취재와 관련한) 사건을 결과적으로 서울중앙지검이 자체 수사하게 됐다”며 “이러한 사실을 서울중앙지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수사팀을 교체하지 않고, 기존대로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정진웅)와 이정현 1차장검사, 이성윤 지검장이 해당 사건을 대검의 지휘를 받지 않고 전적으로 맡아 처리하게 됐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놓고 다른 목소리
대검의 입장문에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때 당시 특별수사팀장이던 윤 총장의 직무배제 사실을 언급했다. 대검은 “윤 총장은 2013년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의 직무배제를 당하고 수사지휘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 역시 윤 총장의 의지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서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총장으로서는 추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한 부당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반면 법무부는 “국정원 사건 수사팀장 당시에 총장이 느꼈던 심정이 현재 이 사건의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느끼는 심정과 다르지 않다”는 문구를 입장문에 포함했다. 이어 “총장이 깨달았다면 수사의 독립과 공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했다. 2013년에는 윤 총장이 수사팀이었지만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수사를 외부에서 통제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 추가 충돌 가능성은 남아
윤 총장은 입장문에 향후 위법성을 다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쟁송 절차에 의한 취소’란 표현을 통해 법적 다툼으로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가 취소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남겼다. 앞서 전국 고검장과 검사장 회의에서는 윤 총장이 추 장관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는 등의 방안을 제안했다. 추 장관의 지휘권 행사에 따라 윤 총장의 수사지휘권이 박탈된 것이 직권남용죄에 해당돼 향후 검찰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복선을 남긴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수사지휘권 발동은 일단락됐지만 앞으로 윤 총장의 행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추 장관은 이르면 이달 안에 대대적 검찰 인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 인사로 윤 총장을 대검에서 고립무원 처지로 만들어 윤 총장을 압박할 수 있다. 추 장관은 취임 직후인 올 1월 윤 총장의 측근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장관의 개입 선례를 남긴 만큼 권력층을 향한 수사를 놓고 윤 총장과 추 장관이 다시 한 번 격돌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검찰 안팎에서는 거론되고 있다.

배석준 eulius@donga.com·고도예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수사지휘권#윤석열 검찰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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