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콥터 머니[횡설수설/박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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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때 양적완화가 헬리콥터로 돈 뿌리기라면 이번에는 ‘폭격기로 돈 폭탄 투하하기(money bomber)’다.” 올해 3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민 1인당 1000달러(약 119만4000원)를 나눠 주겠다고 발표하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무제한 양적완화를 선언하자 미국 금융권에서 이런 평가가 나왔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은 연준이 국채 등을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초유의 ‘양적완화’ 정책을 폈다. 1930년대 긴축정책이 대공황을 악화시켰다고 믿는 그는 “대공황을 다시 맞으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면 된다”는 말로 ‘헬리콥터 벤’이란 별명을 얻었다. 현재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정크본드까지 사들이는 더 과감한 조치로 유동성을 시중에 공급하고 있다.

▷연준과 트럼프 행정부가 2인 3각으로 돈을 풀면서 미국 증시엔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1분기에 일본 도요타의 4%인 10만3000대의 차만 생산하고도 나스닥 시장 시가총액 1위에 올랐다. 실제 굴러가는 차를 아직 한 대도 만들지 못한 수소트럭 업체 니콜라의 시총은 현대차를 넘어섰다. 전통적 분석 방법으로 설명의 한계에 부딪힌 애널리스트들은 ‘주가-꿈 비율(PDR·price to dream ratio)’ 같은 신조어까지 동원하고 있다. 분명한 건 ‘꿈’의 상당 부분은 헬리콥터 머니 영향이란 점이다.

▷각국 부동산 시장에도 과잉 유동성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의 4월 주택 가격은 작년 동월 대비 4.7% 상승했다. 중국 베이징, 상하이 등 27개 대도시 아파트 거래 건수도 3월의 3배 이상으로 늘었다. 집값과 전·월세 가격이 동시에 들썩이는 한국에선 올해 하반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또 한 번의 대규모 현금 유입이 예정돼 있다. 3기 신도시 등에 풀리는 50조 원 가까운 토지보상금이다. 2006∼2007년 토지보상금 60조 원이 풀렸을 때 서울 아파트값은 32%, 전국 아파트값은 20% 급등했다.

▷지난달 30일 뉴욕 상품거래소에서 8월 인도분 금값이 8년 9개월 만에 온스(약 31.1g)당 1800달러를 돌파했다. 달러화 가치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금값은 급등한다. 최근 스티븐 로치 예일대 교수는 “미국의 재정적자 급증 등으로 조만간 달러가 주요 통화 대비 35% 절하될 수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또는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 상승)을 경고했다. 헬리콥터 머니는 후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돈 풀기 후유증을 더 걱정해야 할 한국에서 부작용은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
#헬리콥터 머니#글로벌 금융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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