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소문난 앙숙 ‘유쾌한 동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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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현대캐피탈, 천안 합동훈련
양팀 감독 한솥밥 인연으로 성사… 체력프로그램 공유하고 연습경기
고희진 “초보라 하나라도 더 봐야”, 최태웅 “배운다더니 2연패 안겨”

프로배구 삼성화재 고희진 감독(왼쪽)과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23일 연습 경기를 치른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현대캐피탈 제공
프로배구 삼성화재 고희진 감독(왼쪽)과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이 23일 연습 경기를 치른 뒤 대화를 나누고 있다. 현대캐피탈 제공
“방문 팀을 위해 저희가 배려를 한 겁니다.”

프로배구 남자부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44)은 몇 번이고 “꼭 이렇게 써 달라”고 농담을 건넸다. 현대캐피탈은 23일 충남 천안시에 있는 숙소 겸 체육관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로 삼성화재를 초청해 연습 경기를 치렀다. 결과는 1-3 현대캐피탈의 패배였다.

“아닙니다. 이제 현대캐피탈을 연달아 이길 만큼 우리가 강해진 겁니다.”

삼성화재 고희진 감독(40) 역시 활짝 웃으며 최 감독의 주장을 반박했다. 두 팀은 전날에도 연습 경기를 진행했는데 이때도 삼성화재가 4-0 완승을 거뒀다.(이날 경기는 점수에 관계없이 4세트까지 진행했다.)

프로배구를 대표하는 라이벌 팀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2박 3일 일정으로 공동 훈련을 진행했다. 삼성화재가 ‘적진’에 전지훈련 캠프를 차리고 현대캐피탈 선수들과 체력 훈련도 함께 하면서 연습 경기까지 진행한 것. 두 팀이 공동 훈련 일정을 소화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997년 선수로 입단한 뒤 2013년 현재 자리를 맡게 된 김성우 현대캐피탈 사무국장(45)은 “삼성화재와 같이 훈련을 한다는 건 예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15년 물러난) 김호철 감독님 시절에는 삼성화재와 연습 경기를 한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코트 밖에서 서로를 외면하던 두 팀이 공동 훈련을 진행하자고 뜻을 모은 데는 물론 두 감독의 영향이 컸다. 고 감독이 처음 입단한 2003년부터 최 감독이 자유계약선수(FA)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팀을 떠난 2010년까지 두 감독은 삼성화재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두 팀은 원래 국내 전지훈련을 함께 떠날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지속되자 결국 ‘캐슬’을 훈련지로 선택했다.

4월 부임한 고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제가 최 감독님 뒤를 졸졸 쫓아 다녔다. 최 감독님께서 불러주신 덕분에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며 “제가 초보 감독 아닌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지켜보면 최 감독님께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적과의 동침’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원래 선수 때부터 고 감독이 윗사람에게 참 잘했다”며 “배운다고 와놓고 나서 2연패를 안기고 떠나는 걸 보니 올해 ‘V-클래식’ 매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말했다. ‘V-클래식’ 매치는 2016~2017시즌부터 두 팀의 라이벌전을 일컫는 한국배구연맹(KOVO) 공식 표현이다.

한때 두 팀은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단골 맞대결 상대였지만 삼성화재가 최근 주춤하면서 라이벌 구도도 흔들리고 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제 삼성화재(33.9%)가 아니라 대한항공(52.4%)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현대캐피탈 팬이 더 많다.

고 감독은 “이번 경기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올해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최 감독은 “뚜껑은 열어봐야 안다. 시즌이 개막하면 매운맛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받아쳤다.

천안=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프로배구#삼성화재#현대캐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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