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26>미국인들이 말하는 ‘백인 쓰레기’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3일 16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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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클라리스 스탈링이 처음 한니발 렉터와 대면하는 장면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클라리스 스탈링이 처음 한니발 렉터와 대면하는 장면
“You‘re not more than one generation from poor white trash, are you?” (당신은 가난한 백인 쓰레기 출신으로 아직 한 세대 이상도 지나지 않았죠)

미국 유학 시절 주말마다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공부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요. 그 때 본 영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하나를 꼽으라면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입니다. 머리 아프게 심각한 교훈을 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참 잘 만든 오락 영화였죠. 당시 미국에서는 이 영화 개봉 전부터 잘 만든 영화라는 소문이 자자해서 저 역시 원작소설까지 읽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에 극장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의 영화 보는 안목은 뛰어난지라(?) 이 영화는 그 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더군요.

이 영화에는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은데요. 그 중 하나는 클라리스 스탈링(조디 포스터)이 처음 교도소에서 한니발 렉터(앤터니 홉킨스)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렉터는 스탈링의 말투, 옷차림, 향수, 그리고 몇 마디 대화를 통해 스탈링에 대해 정확히 파악합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집 출신이라며 스탈링의 자존심을 긁습니다. 물론 스탈링도 밀리진 않았죠.

위 문장은 영화에서 렉터의 대사 중 일부분입니다. 렉터는 스탈링의 마음을 아프게 할 여러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유독 가난한 집 출신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가난한 백인‘이라는 것이 미국사회에서 일종의 낙인이 될 수 있음을 아는 거죠. “비싼 옷과 세련된 말투로 감추려고 하지만 너는 어차피 가난한 시골뜨기 출신”이라는 말로 ’백인 쓰레기‘(white trash)라는 표현을 씁니다.

미국의 트레일러 파크
미국의 트레일러 파크

미국에서 백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100m 달리기에서 30m쯤 앞에서 출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삶을 사는데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백인이라고 누구나 다 잘 살고 성공하는 건 아니죠. 빈곤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백인들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으로 가득합니다. 그런 백인들을 가리켜 ’백인 쓰레기‘라고 합니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쓰레기와 동격으로 취급되다니…‘ 처음 이 표현을 들었을 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미국 학교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표현이지만 미국인들이 많이 씁니다. ’흑인 쓰레기‘라는 단어는 없지만 ’백인 쓰레기‘라는 단어는 있습니다.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죠.

’어번 딕셔너리‘(Urban Dictionary 도시의 사전)에 따르면 ’백인 쓰레기‘하면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고 합니다. 트레일러 파크(값싼 트레일러형 주택이 모여 있는 구역)에 살고, 비어 벨리(beer belly, 저렴한 맥주를 많이 마셔서 생긴 불룩한 배)가 나왔고, 남부 말투를 쓰고, 담배를 피우고 등등. 미국에서는 사회적 낙오자 비슷한 분들이 담배를 많이 피우죠. ’백인 쓰레기‘의 이런 이미지들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에 이런 선입견이 있는 건 분명한 듯 합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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